2022년 48%수준 월세 비중
최근에는 70% 가까이 상승
임대료 싼 장기 공공임대 등
충분치 않아 주거불안 가중
장기적으로 공급 확대가 답
당장은 월세맞춤 정책 시급
전세는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 제도였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였지만 전세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사회초년생은 전세를 통해 독립했고, 신혼부부는 전세를 거쳐 내 집 마련에 도전했다. 중산층은 전세보증금을 종잣돈 삼아 자산을 축적했다. 전세는 단순한 임대차 계약이 아니라 한국형 자산 형성 시스템의 한 축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전세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비중은 2022년 48%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70%에 가까워지고 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월세 거래가 전세 거래를 압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자연스러운 시장 변화라고 말한다. 금리 상승과 전세사기, 인구구조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면서 임대인은 전세보다는 안정적인 월세 수입을 선호하게 되었고, 전세사기 이후 임차인 역시 전세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변화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수년간 정부 정책 역시 월세 중심 시장으로의 이동을 뒷받침해 온 측면이 있다. 청년 월세 지원, 월세 세액공제 확대, 월세 금융지원 강화 등은 모두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시장은 정책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부가 월세 부담 완화에 집중할수록 시장은 월세 중심 구조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임대인은 월세를 선택하고 금융기관은 월세 관련 상품을 확대한다. 결국 지금의 월세화는 시장 변화와 정책 변화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선진국형 임대시장으로 가는 정상화 과정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유럽의 월세 시장은 단순히 전세가 없는 시장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사회임대주택은 OECD 평균 약 7%, 유럽연합(EU) 평균 8% 수준이며 오스트리아·덴마크·네덜란드는 전체 주택 재고의 20% 이상이 사회임대주택으로 구성돼 있다. 오스트리아 빈은 시민의 60% 이상이 시영주택 또는 공공지원주택에 거주한다. 즉 유럽의 월세 사회는 장기 거주가 가능한 공공주택과 사회주택, 임대료 안전장치라는 안전망 위에서 운영된다. 반면 한국은 충분한 사회주택과 장기 공공임대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월세화가 진행되고 있다.
월세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월세 사회를 떠받칠 안전망은 부족한데 월세화 속도만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월세 사회가 정착할수록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다. 전세 사회에서는 주거비의 상당 부분이 자산의 형태로 남았다. 전세보증금은 언젠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월세는 다르다. 월세는 소비다. 매달 지출되고 사라진다. 월세 150만원을 10년 동안 부담하면 1억8000만원이 지출된다. 같은 기간 전세 거주자는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월세 거주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결국 월세 사회는 소득의 문제를 자산의 문제로 바꾸게 된다.
과거에는 소득이 높지 않아도 전세를 활용해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월세 사회에서는 같은 소득을 벌더라도 자산 축적 속도가 크게 느려진다. 이는 결국 자산 양극화의 확대로 이어진다. 집을 가진 사람은 자산가치 상승의 혜택을 누리고, 집이 없는 사람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임대료로 지출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경제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계소득이 교육, 문화, 소비, 노후 준비가 아니라 임대료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소비는 위축되고 미래를 위한 투자 여력도 감소한다. 청년층은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되고, 기업은 높은 생활비를 반영한 임금 부담을 떠안게 된다. 주택시장의 변화가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장기적으로는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 최근 감소한 인허가와 착공 물량을 회복하고 재건축과 재개발을 정상화해야 한다. 공급 부족이 지속되는 한 임대시장 안정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입주 물량이 실제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 장기 공실 주택과 준공 후 미분양 주택, 비어 있는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민간 임대시장을 안정적인 공급 파트너로 인정하고 장기 임대에 대한 인센티브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월세 사회를 전제로 한 새로운 주거 정책이다. 전세를 유지할 것인가, 월세를 확대할 것인가의 논쟁을 넘어 월세 사회에서도 청년이 자산을 형성할 수 있고, 중산층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으며,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전세의 종말은 하나의 제도가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자산 형성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 주거 정책은 집을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를 넘어 월세 사회에서도 국민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그것이 전세 이후의 대한민국이 마주한 새로운 과제다.
[이인화 도원건축사사무소 대표·부동산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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