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사망선고’ 받았던 가수 유열, 폐이식 후 ‘삶’을 찾았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19 hours ago 3

서울대병원 박샘이나·박지명 교수-폐섬유증 가수 유열 씨
2017년 건강검진, 첫 의심 소견… 2년 후 폐렴, 정밀검사로 확진
항섬유화 약물 말곤 치료법 없어… 숨차고 기침, 체중도 65kg→50kg
기적같이 폐 이식받고 10개월째… 재활치료-훈련 지속, 건강 좋아
“은혜 갚으려고 사후 장기 기증”

가수 유열 씨(가운데)는 폐섬유증으로 8년 넘게 투병하다 서울대병원에서 폐 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박샘이나 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왼쪽)가 수술을 집도했고 박지명 호흡기내과 교수(오른쪽)는 내과 진료를 맡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가수 유열 씨(가운데)는 폐섬유증으로 8년 넘게 투병하다 서울대병원에서 폐 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박샘이나 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왼쪽)가 수술을 집도했고 박지명 호흡기내과 교수(오른쪽)는 내과 진료를 맡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유열 씨(63)는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다. 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이자 라디오 프로그램 DJ로도 활약했다.

2017년 이후 유 씨의 방송 활동이 뜸해지더니 투병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7월, 유 씨는 서울대병원에서 폐 이식을 받아 제2의 삶을 시작했다. 폐 이식 수술을 집도한 박샘이나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와 내과 진료를 담당하는 박지명 호흡기내과 교수, 그리고 유 씨가 만났다.

● ‘드문 형태 폐섬유증’ 진단

병의 징후가 처음 나타난 건 2017년이었다. A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폐섬유증인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다른 폐질환 흔적일 수도 있어 확진을 내리지는 못했다. 의사는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한동안 별다른 증세는 생기지 않았다.

2019년 5월 폐렴으로 B 병원에 급히 입원했다. 열은 40도에 육박했고 5일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B 병원 의료진은 폐암을 의심했는데, 조직검사 결과 폐섬유증으로 확인됐다.

폐섬유증은 폐에 염증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폐가 굳는 병이다. 폐의 활동 공간이 줄어들어 기능이 떨어진다. 심해지면 호흡 자체가 힘들어진다. 일단 발병하면 정상 상태로 회복하기 어렵다. 섬유화 과정을 늦추는 약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갈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유 씨는 설상가상으로 폐섬유증에 ‘흉막폐실질 탄력섬유증’이란 질병까지 겹쳐 치료가 더 어려운, 매우 드문 사례였다.

폐섬유증은 증가 추세다. 이 병을 예방할 수는 없을까. 박지명 교수는 “금연하고 분진이나 매연, 미세먼지 같은 유해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라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이 병을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발병 원인을 콕 찍어서 밝혀내기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 씨는 금연한 지 25년이 넘었다. 폐렴이 폐섬유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 건 아닐까. 박 교수는 “이때 이미 폐섬유증이 진행되고 있었고, 그 증세로 폐렴이 나타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 ‘사망 선고’까지 받아

이 무렵 증세는 나타나고 있었다. 목이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굵직했던 목소리가 얇아지기 시작했다. 가래가 목에 낀 것처럼 탁한 소리도 나왔다. 무엇보다 숨이 찼다. 유 씨는 “2019년 ‘유열의 영화 앨범’ 영화 시사회 당시 소감을 발표할 때 이미 숨이 많이 찼다”라고 회상했다.

동시에 기침도 잦아졌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금세 지쳤다. 나중에는 계단도 오르기 힘들 정도로 숨이 차고 기운도 없어졌다. 공황장애 조짐도 나타났다. 유 씨는 “숨이 잘 안 쉬어지니까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두려움과 공포감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됐다. 2∼3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항섬유화 약물을 처방받았다. 이 약물은 병의 진행을 늦추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증세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호흡 곤란은 더 심해졌고 기침도 늘었다. 체중은 65kg에서 50kg으로 떨어졌다.

박지명 교수는 “호흡 곤란과 기침, 가래 등은 폐섬유증의 대표적 증세다. 다만 체중 감소와는 큰 관련이 없는데, 이는 유 씨가 드문 형태의 폐섬유증이어서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폐섬유증은 평균 생존율이 3∼4년으로 짧은 편이다. 유 씨는 B 병원에서 약 5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 평균 생존율은 넘겼지만, 건강해진 건 아니었다. 간신히 호흡만 유지할 정도였다. 폐 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유 씨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어 이식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의사는 유 씨 아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말했다. 연명치료 의향이 있느냐고까지 물었다. 사실상 ‘사망 선고’였다.

● 기적적으로 폐 이식에 성공

지난해 5월 유 씨는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박샘이나 교수가 포함된 서울대병원 폐 이식팀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은 데다 지인이 2년 전 이곳에서 똑같은 폐 이식 수술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입원 당시 상황에 대해 박지명 교수는 “하루하루가 응급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워 에크모라는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야 했다. 박 교수는 “버틸 수 있는 기간을 3개월 정도로 봤다. 그 전에 뇌사자 장기가 나와야 수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유 씨도 “한때는 2∼3일을 버티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체중은 40kg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걸까. 그해 7월, 뇌사자 장기가 확보됐다. 하지만 돌연 장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낙담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행운이 다시 찾아왔다. 얼마 후 다시 건강한 폐가 확보됐다.

박샘이나 교수는 “혈액형에 따라 대기 기간이 다르다”고 말했다. 수혈 환경이 가장 수월한 AB형은 3개월 정도다. A형과 B형은 6개월, O형은 1∼2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유 씨는 AB형이었다. 덕분에 곧바로 폐 이식이 가능했던 것. 박 교수는 “사후 장기 기증이 더 활발해지면 그만큼 대기 기간이 줄어들어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취 시간 1시간을 포함해 6시간이 넘는 큰 수술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수술의 경우 가로로 길게 가슴뼈를 잘라내야 했다. 박 교수는 양쪽 갈비뼈 사이로 10∼12cm만 절개해 장기를 이식했다. 흉강경 수술 장비는 그 밑으로 2개씩 구멍을 뚫어 집어넣었다.

수술 결과는 아주 좋았다. 인공호흡기도 이틀 만에 뗐다. 하지만 당장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늘려 호흡이 원활해지도록 하는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매일 30분∼1시간씩 재활 치료를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유 씨가 스스로 걸어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한 달 후부터는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됐다.

10월이 되자 몸이 좋아졌다. 폐 기능도 60∼70%까지 돌아왔다. 길게 말하게 됐고 원래 목소리도 돌아왔다. 식욕도 좋아졌다. 드디어 유 씨는 퇴원했다.

●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후 장기 기증”

박샘이나 교수는 “폐를 이식한 후 1년 동안 정상 유지되면 잘 적응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유 씨는 폐를 이식받고 10개월이 지났다. 박지명 교수는 “현재 추이로 보면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씨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 기도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특히 의료진과 병동에 있던 환자들은 모두 한 가족처럼 응원해 줬다. 유 씨 아내는 “남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교수님이 수시로 들러 살폈다. 정말 감사하고 든든했다”고 말했다.

두 교수는 “유 씨는 정말 모범적 환자다.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다. 그런 부분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수술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 유 씨는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걸으려고 했고 식사를 챙겨 먹으려 했다.

유 씨는 재활 치료에도 적극적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3분도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횟수를 차츰 늘려 나갔다. 이후 서 있기를 시도했다. 열 걸음을 걷고 쉬었다가 백 걸음으로 늘렸다. 이렇게 하면서 체력을 회복해 나갔다.

퇴원한 후로는 매일 1km 정도를 걷는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도 잊지 않는다. 매일 1시간 정도는 반드시 운동한다. 초등학생 아들과 탁구도 하고 다른 공놀이도 한다. 아들이 아빠의 재활 훈련을 돕고 있는 셈이다. 수술 직전 40kg이던 체중이 지금은 55kg까지 늘어났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유 씨는 수술 직후부터 감사 일지를 썼다. 매일의 삶이 감사하다며 활짝 웃었다. “폐를 기증해 준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은혜를 갚기 위해서 저와 제 아내도 사후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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