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는 한국세무사회와 함께 국민들의 세금 상식을 넓히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금 상식, 만가지 사연’을 다루는<세상만사>에서는 현직 세무사들이 직접 접한 실제 사례를 통해 절세 비법을 전수합니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2025년 가을, 대한민국 자영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암울한 지표들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자영업자 빚이 1000조원을 돌파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3개월 이상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한 연체액 규모 또한 코로나 시절보다 2배나 불어났다고 한다.
문제는 단순히 빚이 늘어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출 연체는 곧바로 신용불량으로 이어진다. 신용이 무너지면 당장 현금 흐름이 막혀 세금 체납이 발생하기 쉽고, 세금을 체납하면 국세 완납증명원이 발급되지 않는다.
체납이 일정 기간 지나면 모진 압류의 칼날이 들어온다. 결국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추가 대출은커녕 정상적인 사업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정부와 금융권은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한계에 부딪힌 자영업자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7월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충청 타운홀 미팅‘에서 “7년 동안 연체되고 5000만 원 이하 장기 연체 소액 채권은 탕감하자”며, 채무자들은 통장이 압류당하니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하고 정부로서도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빚 탕감 대상 채권은 16조4000억원, 대상자는 113만명에 이른다.
이처럼 은행에서 대출 원금 자체를 탕감해주면 어떻게 될까? 이는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지만, 바로 여기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세금 문제가 숨어 있다.
J사장님 사례를 보자. 경영난으로 식당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던 J사장님은 오랜 거래은행에서 대출 원금의 일부를 탕감해주겠다는 기적 같은 연락을 받았다.
그는 “이제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그 희망은 두 달 만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세무서에서 날아온 고지서 때문이다.
희망이 절망으로… 대출 탕감은 왜 ‘공짜 소득’이 되었나?
세무서에서 J사장님 앞으로 날아온 봉투에는 탕감받은 빚의 상당 금액을 ‘소득세’로 내라는 고지서가 들어있었다. J사장님은 분노와 배신감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상담실 테이블 위에 고지서를 내팽개쳤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한쪽에서는 살려주겠다며 빚을 깎아주고, 다른 쪽에서는 그게 소득이라며 세금을 뜯어가는 게…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합니까?”
나는 그의 앞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건 나라가 사장님을 일부러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니라, 세법의 원칙이 오해를 부른 경우에 가깝습니다. 만약 길에서 1억 원을 주웠다면 그건 당연히 소득이겠지요? 세법은 은행이 사장님의 빚 1억 원을 없애준 것도, 결국 사장님 주머니에 1억 원이 들어온 것과 같다고 보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채무면제이익’이라는 이름의 소득입니다.”
J사장님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는 원망이 가득했다.
장부 속 숨은 보물, ‘과거의 적자’로 세금 폭탄을 막다
나는 그의 가게 장부를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혹시 그동안 장사가 안돼서 쌓아두었던 ‘장부상의 적자’, 즉 마이너스 금액이 얼마나 되시죠?”
그것이 바로 이 문제의 유일한 ‘비상 탈출구’였다. 절박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사장님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시작했다. 세법은 무너지는 기업을 위해 마지막 기회를 숨겨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월결손금’, 즉 ‘과거의 적자’라는 카드다.
“세법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장님, 탕감받은 빚 때문에 생긴 소득으로, 과거에 손해 봤던 적자를 먼저 메우세요. 그렇게 적자를 메우는 데 사용한 금액에 대해서는 저희도 세금을 받지 않겠습니다’ 라고요.”
과거의 적자가 빚 탕감액이라는 ‘소득’을 흡수해버리면 세금도 함께 사라지는 거다. .
그제야 J사장님의 얼굴에서 분노가 사라지고, 희미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세금 고지서에 절망하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순서대로 알려드릴게요. 가장 먼저 사장님 가게 장부부터 다시 보죠. 우리가 쓸 수 있는 무기가 거기에 숨어있으니까요. 그리고 세금 신고를 할 때, ‘빚 탕감액으로 과거의 적자를 메웠습니다’라고 명확하게 한 줄 적어주는 겁니다. 이 한 줄이 사장님을 구하는 동아줄이 될 겁니다.”
‘빚 탕감, 그 후’를 위한 체크리스트
△ (채무 탕감 시) 없어진 빚은 세법상 ‘소득’으로 잡힌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하자.
△ (세금 신고 전) 우리 가게에 장부상 ‘적자(이월결손금)’가 얼마나 있는지부터 확인하자.
△ (세금 신고 시) 채무면제이익을 결손금 보전에 사용했다고 반드시 장부에 기재하자.
△ (근본 해결) 신용사면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재무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다시 연체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 |
최희유 청아세무회계 대표 세무사, 한국세무사회 미디어 홍보위원 간사, 인천경제자유구역 홍보위원, 인천아트페어 자문위원, 유튜브 ‘최희유의 세금살롱’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