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RNA 유전자치료제 신약개발사 알지노믹스는 연매출 61조원을 상회하는 글로벌 빅파마 일라이릴리(Eli Lilly)와 기술이전 계약을 따낸 첫번째 비상장사다. 일라이릴리는 공격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회사들과 기술협력을 논의하고 있지만 그 중 실제 계약체결까지 이어진 곳은 한미약품(128940), 올릭스(226950), 알지노믹스가 유일하다.
특히 알지노믹스의 경우 아직 비상장사로, 지난 4월 기술성평가를 신청하고 코스닥 입성에 도전하고 있다. 내달 기평 결과를 받아들고, 이후 예비심사를 신청하는 타임라인이다.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내년 상반기쯤 수요예측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데일리는 이성욱 알지노믹스 대표를 만나 기술이전 스토리 및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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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욱 알지노믹스 대표(사진=알지노믹스) |
첫 논의 시작부터 약 3년 걸린 기술이전…릴리가 직접 기술검증
28일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이성욱 알지노믹스 대표는 “2022년 1월 미국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되었고 3년 넘게 리서치 레벨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았다. 2023년 일라이릴리에서 알지노믹스 물질을 가져가 1년 정도 검증했고, 결과가 잘 나와서 2024년 초부터 계약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실제 계약 체결 소식은 2025년 5월 중순에서야 나왔다. 유전성 난청질환에 대한 연구협력 내용이다. 알지노믹스가 후보물질까지 발굴해주고, 이후 개발은 릴리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구조다. 릴리가 계약상 모든 옵션을 행사할 경우 총 계약규모는 약 1조 9000억원 이상에 달하고, 이와 별도로 상업화 매출에 따른 로열티가 발생한다.
양사 간 합의에 따라 선급금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기자가 취재한 바로는 최소 50억원 이상의 규모로 유추된다. 작년 말 클로징한 프리IPO 펀딩에서 투자자들과 약속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알지노믹스는 투자자들에게 “회사가 2024년 9월 5일로부터 2025년 8월 31일까지 50억원 이상의 선급금 및 총규모 5000억원 이상의 라이선스 계약 또는 바인딩 텀싯 체결을 이루지 못할 시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가격을 주당 8768원으로 조정한다”는 조항을 달았다.
이 대표는 선급금 규모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계약 논의가 실제 체결까지 이어질 수 있던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했다. 그는 “릴리 측에서 알지노믹스에 대해 세가지를 긍정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원하는 기술 검증이 된 것. 우리 물질을 가져가서 직접 유효성, 안전성 등 여러 기능에 대해서 검증을 마쳤다. 두번째는 소통능력이다. 일라이릴리는 큰 기업이라 매 단계마다 조심스럽고 소통에 시간이 걸렸다. 알지노믹스는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투명하게 소통했다. 세번째로 알지노믹스의 기술이 전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라는 점이다. 트랜스 스플라이싱 리보자임(Trans-splicing ribozyme)은 우리만 가진 기술인데, 항암제로 개발하는 핵심 파이프라인 ‘RZ-001’이 FDA 패스트트랙에 지정되어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점을 좋게 봤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라이릴리 계약사인 올릭스에 대해 묻자 이 대표는 “RNA 치료제를 개발하는 점에서 이동기 올릭스 대표와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라며 “다만 올릭스는 siRNA 올리고뉴클리오타이드 비만·대사질환 관련이고 알지노믹스는 유전자치료제 쪽이라 일라이릴리 내에서도 전혀 다른 팀과 대화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라이릴리는 왕성한 투자활동과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유명하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것은 GIP·GLP-1 물질인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로, 이를 당뇨치료제로 허가받은 ‘마운자로’가 작년 15조 7000억원, 비만치료제로 허가받은 ‘젭바운드’가 6조 7000억원을 각각 벌어들여 회사 전체매출의 36%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캐시카우로 부상했다. 이 외에도 차세대 R&D를 위한 기술에도 다방면으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유전자치료제에 쏟는 관심도 적지 않다. 작년 8월 보스턴 시포트(Seaport)에 9600억원 투자를 집행해 RNA 및 DNA에 집중하는 R&D센터를 개소했다. 유전자치료제 분야에서 2021년 프리베일(Prevail Therapeutics), 2022년 아쿠오스(Akouos)를 각각 인수하기도 했다.
나아가 RNA 분야에서 2021년 미나테라퓨틱스(MiNA Therapeutics)와 기술계약하며 선급금으로 340억원, 2022년 프로큐알테라퓨틱스(ProQR Therapeutics)과 기술계약에 선급금 및 지분투자를 포함해 1000억원을 투자했다.
올해 들어선 4월 크레욘바이오(Creyon Bio)와 AI-디자인 올리고핵산 치료제 물질에 대해 180억원 선급금의 기술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달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 회사 상가모(Sangamo Therapeutics)와 246억원 규모 선급금의 기술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국내에선 알지노믹스를 선택했다.
한편, 알지노믹스는 3월말 기준 2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했다. 올해 국가과제 선정으로 확보하는 20억원과 더불어 일라이릴리로부터 수령할 선급금을 당분간의 운영비에 보탤 예정이다. 회사에는 현재 40여명의 직원이 재직 중이며 이대로 상장을 이뤄 파이프라인 개발에 필요한 추가 자금을 공모조달할 계획이다.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이 공동대표주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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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욱 알지노믹스 대표(사진=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
‘문장형태’ RNA 염기서열 편집
알지노믹스는 2017년 8월 이성욱 대표가 설립했다. 이 대표는 미국 코넬대 분자유전학 박사 출신으로, 지난 20년간 차세대 기술인 RNA 치환효소 플랫폼 연구를 쌓아왔다. 단국대 생명융합학과 교수를 겸하고 있다.
그간 시드 투자 및 2019년 시리즈 A 120억원, 2021년 시리즈 B 105억원, 2022년 시리즈 C 372억원, 2024년 프리IPO 203억원 투자유치로 누적 투자금은 812억원에 달한다. 최대주주인 21.7% 지분을 보유한 이 대표이고 주요 재무적투자자(FI)는 AON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KB인베스트먼트, 산업은행 등이다.
핵심 파이프라인인 ‘RZ-001’은 현재 간세포함(HCC) 대상 종양내 직접 주사 형태로 국내 임상 1b/2a상을 진행 중이다. 로슈(Roche), 셀트리온의 면역항암제와 병용투여하며 모집환자수는 45명이다. RZ-001은 뇌암(Glioblastoma) 대상으로도 임상을 진행 중이며 해당 적응증으로는 13명의 환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 외에도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인 ‘RZ-004’의 임상 1상 계획(IND)를 승인받았고 올해 말에는 호주에서 투약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트랜스 스플라이싱 리보자임’이 핵산치료제의 메인 모달리티가 되기를 바라는게 창업 목표였는데, 이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siRNA, CRISPR는 이제 대부분 아는 모달리티인 것처럼 우리의 기술도 인지도가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RNA 편집 방식에는 크게 두 분류가 있다. 철자 고치는 것처럼 염기서열을 하나하나 고치는 ‘RNA 베이스 에디팅’, 그리고 문장을 바꾸는 것처럼 통째로 바꾸는 방식이다. 알지노믹스는 후자”라고 말했다.
빅파마들 사이에서도 RNA 편집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철자를 고치는 베이스에디팅 분야에서는 웨이브라이프사이언스(Wave Life Sciences)가 GSK와 1640억원 선급금의 딜을 체결했고 로슈(Roche)는 쉐이프(ShapeTX)와, 일라이릴리는 프로큐알(ProQR)과 협업 중이다.
‘문장을 바꾸는’ RNA 편집 기술로는 엑손 편집 기술을 가진 애시디언(Ascidian Therapeutics)이 로슈와 작년 576억원 선급금의 딜을 체결했다. 일라이릴리는 알지노믹스를 통해 관련 기술을 확보한 셈이다.
이 대표는 “DNA치료제는 한번 유전자를 변형시키면 돌이킬 수 없다는 비가역성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알지노믹스 기술은 DNA의 복사본인 RNA를 건드린다. 원본인 DNA를 건드리지 않지만, 약효는 영구히 지속되게끔 바이러스벡터를 이용한다”며 “항암 파이프라인인 RZ-001은 아데노바이러스(AV)를 쓰지만 유전질환이나 퇴행성 질환 파이프라인에는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를 쓴다. AAV는 분열하지 않는 신경세포나 망막세포에 들어가면 DNA가 끊임없이 RNA를 생성한다. 이때 생성되는 RNA가 바로 치료제로 작용하는 우리의 라이보자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AAV치료제인 럭스터나, 졸겐스마는 일생에 한번 맞는 것처럼 알지노믹스 치료제도 그렇다. 희귀 유전질환 대상이며 한번만 약을 쓰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약가가 높다. 럭스터나는 유전성 실명 치료제로 10억원, 졸겐스마는 척수근위축증 치료제로 20억원대 약가다. 보험이 적용되어야 하고 제3국가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치료제라는 점은 해결해야할 부분이지만 세상에 필요한 약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