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는 신데렐라 계보가 있다. 2012년 아마추어 신분이던 김효주가 롯데마트 여자오픈에 추천 선수로 출전해 우승했고, 2017년엔 최혜진이 아마추어 추천 선수 자격으로 용평리조트오픈 등에서 2승을 거머쥔 뒤 화려하게 프로로 전환했다. 2019년엔 드림(2부)투어에서 뛰던 유해란이 제주 삼다수마스터스에서 깜짝 우승하며 정규투어 풀시드를 따냈다. 혜성처럼 등장한 이들 모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성장해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한국 여자 골프의 신데렐라 계보를 이을 또 한 명의 샛별이 탄생했다. 드림투어를 통해 올해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디딘 김민솔이 KLPGA투어 시즌 최대 총상금(15억원) 대회에서 우승했다. 올해 드림투어에서 뛰고 있는 김민솔이 KLPGA투어에서 생애 첫 승을 차지하면서 오는 9월 KB금융 스타챔피언십부터 ‘풀시드 자격’으로 정규투어 무대를 누빌 수 있게 됐다.
◇올해도 명승부 펼쳐진 행운의 언덕
김민솔은 24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25’ 마지막 날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3개, 보기 2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 합계 19언더파 269타를 적어낸 김민솔은 이틀 연속 우승 경쟁을 펼친 노승희(18언더파)를 단 한 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김민솔은 이번 우승으로 상금 2억7000만원과 함께 KLPGA투어 1년 풀시드권을 받았다.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11m 이글퍼트로 대회에서 또 하나의 명장면을 만들어낸 김민솔은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생애 첫 승을 와이어 투 와이어로 작성한 김민솔은 “오늘 경기 초반에 흐름이 좋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마지막 세 홀에서 잘 마무리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우승 경쟁은 김민솔, 노승희, 이다연의 3파전으로 펼쳐졌다. 세 선수가 3타 차 공동 선두로 챔피언조에서 샷 대결에 나섰다. 생애 첫 챔피언조로 나선 김민솔은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한때 흔들렸다. 긴장 때문인지 티샷 정확도가 떨어졌다. 이날 페어웨이 적중률은 38.46%에 그쳤다. 불안한 티샷 때문에 5번홀(파4)과 후반 11번홀(파3)에서 보기를 범했고, 우승 경쟁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김민솔은 마지막 세 홀에서 대역전극을 썼다. 16번홀(파3)에서 7m에 가까운 버디퍼트를 떨어뜨려 기세를 올린 그는 17번홀(파4)에서도 4m가 넘는 거리의 버디퍼트로 다시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홀이었다. 이날 8타를 줄여 공동 선두로 경기를 먼저 마친 홍정민을 포함해 네 명의 선수가 동타를 이룬 상황에서 그는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누구보다 침착한 플레이를 펼쳤다. 티샷을 255m나 날린 그는 201m 남기고 4번 유틸리티로 친 세컨드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렸다. 이어 장거리 이글퍼트를 과감하게 성공해 각각 버디와 파에 그친 노승희, 이다연을 차례로 따돌리고 ‘새 포천퀸’으로 등극했다.
◇DNA·단단함·노력으로 무장
김민솔이 KLPGA투어의 새로운 신데렐라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일단 타고난 DNA를 무시하지 못한다. 부모님 중 운동선수 출신은 없지만 김민솔의 아버지(176㎝)와 어머니(172㎝) 모두 큰 키를 자랑한다. 특히 아버지는 운동선수처럼 건장한 체격으로 유명하다. 부모님의 장점만 잘 물려받은 김민솔은 178㎝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균 235m의 장타가 가장 큰 무기다.
두 번째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단단함이다. 김민솔은 지난해 7월 프로로 전향한 뒤 정규투어 시드전에서 미끄러졌다. 잠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올해 드림투어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며 때를 기다렸다. 김민솔을 오랫동안 지켜본 오세욱 두산건설 상무는 “꾸준히 묵묵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선수”라고 했다.
세 번째는 끊임없는 노력이다. 김민솔은 어릴 때부터 오직 골프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오 상무는 “훈련을 계획적으로 하는 것으로 유명한 선수”라며 “KLPGA투어에서 뛸 것을 대비해 최근엔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포천=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