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마법: "시간을 버티게 만드는 제도"[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19

1 day ago 8

[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말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세금을 싫어합니다. 월급 명세서에서 세금이 떼일 때마다 내 돈이 빠져나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퇴직금을 받을 때도 “복잡한 건 모르겠고, 일단 세금 내고 털어버리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연금에서 세금은 단순히 피하고 싶은 비용만은 아닙니다. 세금은 돈을 얼마나 오래 계좌 안에 머물게 할 것인지, 언제 꺼내게 할 것인지, 일시금으로 받을지 연금으로 받을지를 결정하게 만드는 제도적 신호입니다. 세금이 장기 보유와 연금 수령에 확실한 보상을 주면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반대로 중간에 깨도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눈앞의 목돈을 선택합니다. 이 시간의 설계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소득세율이 매우 높았던 195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0년대 미국, “90%가 넘는 세금을 피하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한동안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90%를 넘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세율을 적용받은 것은 아니고, 매우 높은 소득 구간에 적용되는 한계세율이었습니다. 그래도 고소득 임원과 기업 입장에서는 보상을 지금 줄 것인지, 나중에 줄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때 월가의 변호사와 회계사들이 주목한 개념이 ‘지연 보상(Deferred Compensation)’입니다. “보너스를 지금 받지 마십시오. 지금 받으면 높은 세율을 적용받습니다. 대신 이 돈을 회사가 맡아두었다가, 은퇴하신 뒤에 드리겠습니다. 은퇴 후에는 소득이 줄어 세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돈을 받는 시점만 뒤로 미뤘을 뿐인데, 세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고세율의 ‘현재’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의 ‘미래’로 소득을 이동시키는 것, 이것이 연금 세제의 핵심인 ‘과세 이연(Tax Deferral)’의 출발점입니다. 제도의 본질 — ‘소득 구간’을 바꾸는 기술 선진국의 연금 세제인 EET 시스템(Exempt-Exempt-Taxed, 가입 시 적립금 비과세/공제 E, 운용 수익 비과세 E, 최종 연금 인출 시 과세 T를 적용하는 글로벌 연금 세제 구조)은 바로 이 ‘시간차 공격’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세금 감면이 아니라, 일종의 세금 차익 거래(Tax Arbitrage)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현역 시절에는 소득이 높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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