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간직한 봄의 전령 '가창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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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는 음악사에서 독특한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아버지 요한(Johann Strauss I, 1804~1849, 墺)은 아들의 재능이 자신보다 뛰어나자 시기심에 사로잡혀 음악가가 되는 길을 방해했다. 그러나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던가. 아들 요한(Johann Strauss II, 1825~1899, 墺)은 결국 왈츠의 지존인 '왈츠의 왕’에 오른다. 아버지는 글자 그대로 '왈츠의 아버지'에 머물렀고 말이다.

궁정 무도회에서 악단을 지휘하고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테오 자슈의 1888년 그림) / 출처. Wikimedia Commons

궁정 무도회에서 악단을 지휘하고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테오 자슈의 1888년 그림) / 출처. Wikimedia Commons

1882년, 57살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독특한 왈츠 하나를 세상에 내놓는다. 가창(歌唱) 왈츠. 관현악 반주에다 콜로라투라의 노래를 더한 형태다. '봄의 소리/Frühlingsstimmen, op 82'. 당시 잘 나가던 소프라노 비앙카 비앙키(Bianca Bianchi, 1855~1947)를 무대에 내세웠다. 첫 반응은 그저 그랬으나,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해 이 곡은 이제 '봄의 전령' 같은 위상으로 우뚝 섰다. 노랫말은 작가 리하르트 즈네(Richard Genée, 1823~1895)가 썼다.

'봄의 소리 왈츠'를 처음 부른 콜로라투라 비앙카 비앙키 / 출처. Wikimedia Commons

'봄의 소리 왈츠'를 처음 부른 콜로라투라 비앙카 비앙키 / 출처. Wikimedia Commons

“종달새가 창공으로 날아오르고/다사로운 바람은 포근한 행복을 싣고 오네요/그러곤 대지에 입을 맞추죠/봄이 찬란히 찾아오면 모든 고통은 끝난답니다./세상살이 아픔도 저만치 달아나고요/고뇌는 사그라들어 기쁨으로 변하고/행복이란 믿음이 다가옵니다/햇살이 무르익고 모두에게 웃음꽃이 피어나죠”

“나이팅게일이 노래하는 첫 소절이 들려요/노래의 여왕을 아는지라 다른 새들은 침묵하네요/달콤한 그 목소리는 정말 아름답죠/아 그래요, 행복한 울림의 빛나는 노래/들리네요, 들려오네요/가슴이 꿈결처럼 움직여요/이 아름다운 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간직한 봄의 전령 '가창 왈츠'

미국 태생 흑인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Kathleen Battle, 1948~ )이 빼어나게 잘 불렀다. 그녀에게 이 곡은 실로 맞춤하다. 가늘고 맑은 음색에 서정적이면서도 기교가 빼어난 스타일과 ‘봄의 소리’가 주는 도약적인 신선함, 생생함이 잘 어울린다. 1974년 뉴욕 메트의 지배자로 불린 거장(巨匠)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 1943~2021)에 의해 발탁돼 1980~189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한때는 사상 최고의 리릭 콜로라투라라는 찬사를 받기도. 1985년 타임지의 모델로 섰으며 그래미상 3회 수상에 빛난다.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의 앨범 'a portrait' 표지 / 출처. yes24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의 앨범 'a portrait' 표지 / 출처. yes24

그러나 배틀에게 있어 가장 큰 영광은 1987년 비엔나 신년음악회에 초청돼 악우(樂友)협회/무지크페어라인(Musikverein) 황금홀 무대에 섰다는 사실. 무려 카라얀 지휘 하에서 바로 이 봄의 소리 왈츠를 화려하게 노래했던 것. 최고의 환호와 찬사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7년 후 배틀은 메트로부터 정식 해고를 당한다. 그동안 쌓여온 오만과 무례의 결과였다.

[캐슬린 배틀 -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

리허설 도중 동료에 대한 불만을 면전에서 퍼붓고, 자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연 핵심 관계자의 입회를 거절하기도 했다. 툭하면 호텔을 교체해 달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식사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레스토랑 주인에게 무안을 주고 웨이터를 닦달했다. 이런 추문이 음악계와 언론 안테나에 잡히자, 그의 오랜 후견인 레바인도 두 손을 들고 말았던 것. 2000년대 들어선 어쩌다 이벤트나 세리모니에 등장하는 정도. 성정(性情)이 거칠어지면 모습도 따라가나 보다. 어여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 배틀은 만성적 비만에 급격한 노화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는 보통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하면, 왈츠라는 다소 경량화⸱연성화된 클래식 작곡가라며 상대적으로 낮추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명사(名士)와 고수(高手)들의 평가는 사뭇 달랐던 게 새롭다.

브람스는 그를 가리켜 "내가 질투하는 유일한 사람. 요한 슈트라우스는 음악에 젖어 살며 언제나 영감이 끊이질 않는다"라고 말했다. 베르디는 "그는 나의 천재적인 동료로서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고 했고, 칭찬에 인색한 바그너마저 "음악사에서 천재는 바흐부터 슈트라우스까지"라고 극찬했다. 이름이 비슷한 후배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웬만한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왈츠 하나를 만드는 게 더 어렵다. 그런데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고 했다. 프랑스 문호 에밀 졸라의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 작가들은 세상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준다. 반면 요한 슈트라우스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들려준다."

비엔나 공원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금 부조물 / 출처. 위키피디아

비엔나 공원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금 부조물 / 출처. 위키피디아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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