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의 얼굴은 특별했다. 81년 전통의 무게감은 유지하되, 상상도 못 했던 파격 시도들이 주요 무대에서 펼쳐졌다. 축제의 상주 음악가는 '노래하는 지휘자' 바바라 해니건이었다. 현대음악의 전도사이자 클래식계 혁신의 아이콘인 그는 이번 축제에서 생동감 넘치는 여러 장면을 기록으로 남겼다.
축제 상주 음악가로 프라하에
세계 최정상 악단과 거장들이 오르는 루돌피눔 드보르자크 홀. 바바라 해니건은 2주간 루돌피눔에 머물며 네 차례 공연과 마스터클래스를 이끌었다. 단순한 객원이 아니었다. 축제의 얼굴이자, 그 정신을 함께 만드는 예술적 동반자였다. 지난 2일, 루돌피눔에서 한국 언론 최초로 바바라 해니건과 인터뷰했다.
축제의 상주 음악가로 선정된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루돌피눔에서 네 번의 콘서트와 마스터클래스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뜻깊어요. 이곳의 벽과 바닥, 콘서트홀 모든 것이 역사와 기억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제 음악을 이곳에 가져와 건물에 스며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에게 프라하는 풍부한 문화와 남다른 예술 에너지를 지닌 도시다. "프라하는 제게 문화, 음악, 예술, 영화, 연극이에요. 거리 곳곳에서, 아름다운 건물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볼타바 강, 카를교에서도 그 풍부한 역사를 느낄 수 있어요."
상주 기간 내내 해니건은 따스한 환대를 받았다고 했다. "지난 2주간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꼈어요. 청중, 체코 필 단원들, 축제 측 모두 저를 따뜻하게 맞아줬어요.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많이 가져왔는데도, 모두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죠."
전통 위에 선 혁신
프라하의 봄 축제는 왜 해니건을 선택했을까. 역설적으로 그 답은 그의 '비 전통성'에 있다. "저는 전통적이지 않지만, 음악에 매우 진정성 있는 태도를 갖고있어요. 저 자신과 감정, 작곡가, 음악가, 관객을 대할 때 진실합니다. 어떤 면에선 그게 클래식이라고 생각해요."
소프라노인 그의 음악적 뿌리는 전통과 닿아있다. 클래식부터 현대음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노래할 땐 벨 칸토(Bel Canto·아름다운 노래) 기법을 고수한다. 벨 칸토는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완성된 전통 성악 창법으로 가장 이상적이고 건강한 발성으로 꼽힌다. 그는 "어떤 노래든 최고의 기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장르의 음악도 클래식의 가장 전통적인 발성법으로 담아내는 철학. 그것이 전통의 클래식 축제와 혁신의 아이콘 해니건이 만날 수 있었던 접점이었다.
리사이틀부터 체코 필 협연까지
해니건이 선보인 네 번의 무대는 매번 달랐다.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와의 리사이틀, 벨체아 콰르텟과의 실내악, 오페라 〈인간의 목소리>, 체코 필하모닉과의 협연. 각각의 무대는 해니건의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특히 오페라 <인간의 목소리>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무대 위 멀티태스킹의 최고봉이었다. 그는 이별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심리를 노래하고, 강렬한 제스처로 연기를 펼쳤다. 그러면서 동시에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했다. 무대 뒤편엔 대형 스크린에 자신의 실시간 클로즈업 영상을 띄워 노래하는 화자의 깊이 있는 내면을 밀도 있게 보여줬다.
이처럼 클래식 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혁신적인 장면은 전통의 오케스트라 체코 필하모닉과 함께 만들었다. 해니건과 체코 필의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순한 객원 지휘가 아니라, 노래하면서 동시에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방식이었다. 해니건은 체코 필에 대해 "매우 감성적인(emotional) 오케스트라로, 은유와 이미지를 다루는 걸 좋아한다. 저와 그 점에서 잘 맞았다"고 했다. 단 3일간의 짧은 리허설이었지만, 마지막 날 리허설 직후 단원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6월 2일 공연 체코 필 단원들은 해니건이 노래하며 지휘하는, 조지 거슈윈의 '걸 크레이지'에 맞춰 함께 노래했다. 체코 필 단원들이 무대에서 노래한 것은 세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광경. 이를 이끌어낸건 해니건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이었다.
"저에게도 오케스트라에도 즐거운 무대입니다. 토니상 수상자인 빌 엘리엇과 제가 함께 만든 곡인데,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이 그래미상을 받았죠. 사랑을 찾는 설렘, 사랑에 빠졌을 때 오는 황홀함, 영혼을 가득 채우는 기쁨에 관한 곡입니다."
노래하는 지휘자
해니건이 지휘를 시작한 건 40세, 올해로 15년째다. 현재 예테보리 심포니의 수석 객원 지휘자이며, 2026/27 시즌부터는 아이슬란드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을 앞두고 있다. 지휘자로도 성공적인 그는 소프라노로 활동 역시 왕성하다. 그는 지휘를 시작하고 노래가 더 즐거워지고 깊어졌다고 했다.
"가수가 되는 것, 지휘자가 되는 것, 그리고 두 경력을 모두 유지하는 것도 드문 일입니다. 저 말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제가 지휘할 때 온몸이 노래하고, 노래할 때 온몸이 지휘한다"고 했다. 노래와 지휘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공명한다. "지휘를 통해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이 가수로서 저를 더 음악 안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두 역할이 서로를 끊임없이 영양분으로 삼죠."
그의 지휘는 감성과 대화의 언어로 구성된다. "저는 꽤 감성적인 지휘자입니다. 음악을 악기와 목소리로 이뤄진 대화라고 생각하고, 수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하이든 교향곡이든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Verklärte Nacht)'이든, 한 악기가 다른 악기와 어떻게 대화하고 서로를 지지하는지 늘 찾습니다."
그의 리더십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진정성과 친절이다. 권위로 누르는 방식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에 방점을 찍는다. "저는 동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협업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진정성과 겸손, 친절로 리더십을 이끌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할 때 최고의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친절을 통해 그 모습을 끌어냅니다."
한국과의 인연…한강, 진은숙, 박지윤
작가 한강, 작곡가 진은숙,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등. 해니건은 한국에서 공연한 적은 없지만, 한국 예술가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중 한강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영국 작곡가 로라 볼러가 한강의 소설 <흰>에서 텍스트를 가져와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작곡했고, 해니건이 이 곡의 세계 초연을 맡았다. 올해 1월 예테보리 심포니와의 초연을 시작으로, 런던 심포니, 코펜하겐 필하모닉과도 무대에 올렸다. 다음 시즌에는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뮌헨에서 다시 이 곡을 노래할 예정이다.
지난 3월 런던 심포니 공연에는 한강 본인이 직접 찾았고, 그 자리에서 작가와 처음 만났다. "한강은 정말 대단한 작가고, 이 곡은 아주 중요한 곡입니다. 언젠가 이 곡을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프라하의 봄에는 진은숙의 30여 년 음악 여정을 조명하는 앙상블 모데른의 무대도 함께 올랐다. 해니건과 진은숙은 2005년 작곡가 리게티의 장례식에서 처음 만났고, 2014년 진은숙이 해니건을 위한 곡을 작곡하며 인연을 이어왔다. 서울과 프라하, 두 도시의 예술적 접점이 뜻밖의 방식으로 교차했다.
해니건이 그리는 앞날은 화려하기보다 단단하다. "앞으로도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고, 가능한 최고의 수준으로 음악을 하는 것이 목표에요. 그러려면 정신과 신체 모두 건강해야겠죠. (웃음)"
프라하=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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