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기승… 관련 민원 급증 추세
인천 계양산 등산로엔 사체 10cm
주민 “얼굴에 달라붙어 불쾌” 호소
“강력한 살충땐 생태계 교란 우려”… 지자체, 방제 쉽지 않아 골머리
30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북악산 등산로에서 산책하던 황중식 씨(63)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일명 러브버그)를 손으로 연신 쫓으며 이렇게 말했다. 약 600m에 이르는 산책로 전역에는 수백 마리의 러브버그가 무리를 지어 날고 있었다.
여름철만 되면 어김없이 기승을 부리는 러브버그로 인해 서울 인천 등 수도권 곳곳에서 시민들의 불편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방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차라리 살충제로 박멸해 달라”는 강경한 요구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학적 살충제가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며 균형 잡힌 친환경 방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서울에서만 민원 2년 새 2배 급증
서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2022년 4418건에서 2023년 5600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9296건에 달했다. 1년 새 두 배 가까이로 증가한 셈이다. 서울 곳곳에서 러브버그를 쫓기 위해 시민들이 손을 휘저으며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악산에서 만난 한 시민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러 왔는데 벌레가 계속 입과 코에 들어올 정도”라며 불쾌한 얼굴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러브버그는 대개 민가와 가까운 공원이나 아파트 주변 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유충은 유기물이 많은 토양에서 잘 자란다. 도심의 정원, 가로수 아래, 쓰레기나 퇴비 등이 좋은 서식지가 된다. 성충은 날아다니며 사람의 얼굴, 몸 등에 달라붙는다. 생김새가 검고 파리와 비슷해 불쾌함을 느낀 시민들의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2022년까지만 해도 관련 민원의 98%가 은평·서대문·마포구에 집중됐지만 현재는 서울 전역에서 고르게 발생하고 있다.
● “친환경 방제… 산책 시 밝은색 옷 피해야”민원이 잇따르자 서울시의회는 올해 3월 러브버그 등 대거 발생하는 곤충에 대해 시장이 체계적이고 친환경적인 방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생태 특성과 피해 정도를 분석해 정기적인 방제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민간 전문가와 지역 주민 의견을 반영해 방제 효과를 높이는 것이 조례의 주요 골자다. 필요시 긴급 방제도 가능하도록 했다.하지만 살충제를 이용한 전면적 방제는 여전히 쉽지 않다. 러브버그는 유충 시기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익충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법적으로 병해충 방제 대상이 아니다. 무분별한 살충은 생태계 교란 우려도 크다. 인천 계양구 관계자는 “러브버그는 병해충 사업 대상이 아니어서 별도의 방제 작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러브버그 대발생이 기후변화로 인한 불가피한 일이라며 친환경 방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태풍과 호우로 인한 기류 변화로 중국 지역의 러브버그가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며 “이들이 해충이 아님에도 화학적 방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등 생태계 내 유익한 기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방역 관계자는 “밝은색 옷은 러브버그가 꽃으로 오인하고 날아들 가능성이 높다”면서 산책 시에는 흰색·노란색 옷을 피하고, 방충망의 틈새를 점검·보완하는 등의 일상 속 예방 조치를 함께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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