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수도방위사령부 내에 위치한 전시지휘소, 일명 ‘B-1 벙커’ 내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장기간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안보의 중추인 군 지휘시설에서 10년 이상 발암물질이 검출되고 있음에도 국방부가 이를 묵인, B-1 벙커 내에 장병들을 투입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희 의원실은 최근 자신을 현역군인이라고 밝힌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B-1 벙커 내부의 라돈 수치가 실내 공기질 기준치를 장기간 반복 초과해왔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저는 즉시 국방부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군은 2013년부터 B-1 벙커의 공기질을 정기적으로 측정해왔으며 벙커의 일부 구역에서 실내공기질 관리법상 기준치인 148 베크렐(Bq/ ㎥ ) 을 매번 초과하는 라돈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단순한 수치 초과에 그치지 않는다. 국방부 시설국은 문제를 인지하고도 지난 10여년간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 위험한 환경을 개선하지는 못했다”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실태 파악과 저감방안 수립을 위한 전문 연구용역을 실시했고, 2023년과 2024년에는 약 7억8000만원을 들여 저감시설 보강공사까지 진행했지만, 최근 측정치 역시 기준치를 여전히 상회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군이 B-1 벙커의 일부 지역에서 측정한 라돈 수치는 2020년 기준 최고 711베크렐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가 측정 지역을 확대하고 저감시설 보강공사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일부 구간에서는 최고 706베크럴(작년 기준)이 검출되는 실정이다.
유 의원은 “B-1 벙커는 암반과 지하수에서 고농도 라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구조”라며 “내부는 협소하고 외부 공기 유입과 자연 환기가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일부 지역의 라돈 수치는 반복적으로 권고 기준을 초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라돈은 무색무취의 자연 방사성 기체로 1급 발암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흡연 다음으로 폐암의 주요 원인으로 라돈을 지목하고 있으며, 특히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는 지속적인 건강 피해를 유발할 수 있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라돈이 검출된 B-1 벙커는 전시 대통령의 지휘시설이자 매년 한미연합연습이 개최되는 공간이다. 미군 일부도 이 공간에서 훈련에 참여하나, 국방부는 주한미군 측에도 비정상적인 라돈 수치에 대해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 의원은 “한미동맹 정신을 훼손할 수 있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또 “더욱 놀라운 점은 작년 10월 창설된 전략사령부 일부 참모부 요원 약 40명이 B-1 벙커에 상주하며 근무했었다는 사실”이라며 “국방부는 사전에 전략사 지휘부에 라돈 수치 초과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이 사실을 몰랐던 전략사는 공조기를 평균 약 30% 수준으로만 가동한 상태에서 우리 장병들을 3개월 가량 고농도 라돈에 무방비로 노출시켰다”고 쓴소리했다.
당시 전략사 벙커에서 근무한 장병들 사이에서는 ‘원인 모를 두통과 피로가 심하다’는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라돈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한 간부의 배우자가 나서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고 유 의원은 설명했다.
유 의원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장병들을 그 공간에 투입하는 것은 직무 유기이자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국가가 장병들의 건강을 보살펴주지 않는다면 무슨 염치로 국민의 안전을 지켜달라 요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