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에는 글로벌 향수·스킨케어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퍼퓸 로드'가 있다. 르라보(미국), 이솝(호주), 딥티크(프랑스), 킨포크(덴마크) 등 세계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다. 지난 4월 이곳에 특이한 일본 브랜드 하나가 문을 열었다. 화학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매장 안에서 고객이 직접 스포이드로 향수를 조향하고, 정원에서 허브를 따서 제품을 완성한다.
브랜드 이름은 '시로(SHIRO)'. 홋카이도에서 시작한 이 브랜드는 다시마, 소금, 허브 등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토대로 제품을 만든다. 영국과 대만을 거쳐 한국에 첫 상륙했다. 최근 성수동 매장에서 만난 후쿠나가 타카히로 최고경영자(CEO)는 "K뷰티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 시로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한국 시장에 자리잡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앞으로 한국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시로의 핵심 철학은 '기존의 것을 존중하고,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이다. 시로 성수 매장도 그렇다. 과거 구두 제조 공장이었던 공간을 허물지 않고, 최대한 공간의 뼈대를 살리는 쪽을 택했다. 공장 폐기물로 수명을 다할 뻔했던 자재들도 시로 성수 매장에선 제품을 진열하는 받침대로 재탄생했다.
제품에도 브랜드 철학이 녹아있다. 시로의 대표 제품은 홋카이도 하코다테 바다에서 나는 '가고메 다시마'를 활용한 제품이다. "일본에선 보통 된장국에 다시마를 넣어서 먹는데, '촉촉한 다시마로 화장품을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마를 물에 담근 후 꽉 짰을 때 나오는 점성 성분으로 제품을 만들었죠. 제품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한 화학 공정을 아니라면 자연의 힘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해요."
타카히로 CEO는 과거 영국과 대만에 매장을 낸 적이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해외 진출'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 국가에선 일본 제품을 그대로 가져가 판매했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웠다"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한국만을 위한, 한국 소비자만을 위한 제품을 개발해 선보일 것"라고 했다.
그 시작은 '은방울꽃 오 드 퍼퓸'이다. 한국에서만 선보인다는 소문에 성수동 매장 오픈 이틀 만에 400개 넘게 팔렸다. 은방울꽃의 의미는 '행복을 전하는 꽃'. 한국에서 은방울꽃을 웨딩 부케에서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타카히로 CEO는 "앞으로 인삼, 깻잎 등 한국에만 자라는 식물을 활용한 제품이나, 신안 소금을 활용한 바디 스크럽 등을 개발하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