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앞에서[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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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가 태어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몸이 생겼는지 모르는 것 같은 눈으로유아차에 앉아 있던 아기가내 눈과 마주친다, 순간아기가 다칠 것 같다내 눈빛에서 튀어 나가는 이빨과 발톱을어떻게 눈알에 붙들어 매야 하나 난감하다자신을 방어할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아기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끊임없이 뭔가를 방어하고 있던 내 두려움도아기 앞에서 다 들켜버린다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고 관절이 연약해지며내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것이 있다혀에 가득한 말들은 발음을 잃고표정은 뭘 해야 할지 몰라 입 벌리고 멍해진다―김기택(1957∼)이 시의 1연은 참 놀라워서 여러 번 반복해 읽고 싶은 대목이다. 아기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한 묘사로 표현한 글을 읽은 적이 없다. 김기택 시인의 시는 묘사와 관찰만으로 정곡을 꿰뚫어 보여준다. 아기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세상에 있다. 자신의 모습이 생겨났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란 듯 그저 존재한다. 이 해탈의 경지! 태어난 아기들은 어른이 애써 노력하고 평생 수행해도 얻기 힘든 도의 경지를 갖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작은 부처처럼 보인다. 잠든 부처, 웃는 부처, 큰 소리로 울어재끼는 부처님들. 화자는 자신의 눈빛에 “아기가 다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눈빛에는 “이빨과 발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삿됨’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기는 방어할 생각도 없이 편하게 앉아 있을 뿐이다. 그 앞에서 순해지고 잠시 깨끗해지는 건 어른이다. 아기에게 이 오래된 세상은 얼마나 ‘새것’ 같을까? 아무런 편견 없이 세상을 마주하는 유연한 자세가 부럽다. 언어 없이, 마음 없이, 침 흘리며 입을 벌린 채 세상과 마주한 존재는 얼마나 귀한지! 박연준 시인©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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