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보러 온, 그 시대의 얼굴들[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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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사진 No. 182 日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을 보고 지난 7일 오후, 휴가를 하루 내고 여의도의 한 극장을 찾았습니다. 집 근처 상영관은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어, 차라리 지하철로 이동하는 수고를 택했습니다.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의 작품과 인터뷰로 이뤄진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이 개봉했기 때문입니다. 1936년생인 그는 1964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뒤 60여 년간 100번 넘게 바다를 건너며, 청계천 판잣집부터 동두천 기지촌과 도자기까지 10만 컷이 넘는 이 땅의 얼굴을 찍어 왔습니다. 일본 보도사진계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90·사진). 그의 한쪽 눈은 어릴적 사고로 실명했다/ 영화사 제공 이번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인데 그의 작업에서 일본 미나마타병의 참상과 그 후유증을 기록한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관련한 그의 대표작은, 1965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 당시 비를 맞으며 침묵 속에 거리를 걷던 서울대생들의 모습입니다. 이와 함께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판자촌의 고단한 삶을 담은 연작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1965년 찍은 청계천 판잣집 모습이다. 눈빛출판사 제공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등지에서 여러 차례 전시가 열려 왔습니다. 두터운 팬덤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평일 오후여서였을까요. 꼭 그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크게 흥행했다는 소문은 없으니까요. 그날도 관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열 대여섯 명.그 얼굴들을 살짝 훑어보았습니다. 하나같이 머리가 희끗한 중노년이었습니다. 1950~60년대 생으로 보이는, 이제는 은퇴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었죠. 젊은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는 한국 신문기자들의 호흡으로는 좇기 버거웠던 격변의 현대사를 차분히 기록하고 정리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진가들보다 오히려 한국 현대사를 더 잘 기록한 사진가로 평가받습니다. 지금 4, 50대 신문 사진기자들에게 그가 끼친 영향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그런 그의 작품과 육성을, 영화라는 대중적인 장르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렌즈 2개와 렌즈 3개의 차이영화에서 제가 가장 크게 공감한 대목은, 렌즈를 2개 가져가느냐 3개 가져가느냐를 두고 한국인 아내와 벌이는 ‘티키타카’였습니다. 출장 가는 남편에게 아내가 묻습니다. 렌즈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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