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가) 거의 4~5배 이상 차이가 나요. 2년 전쯤 지금은 글로벌 빅테크로 간 친한 분의 연봉계약서를 받아 봤는데 대여섯배 정도 차이가 너더라고요."
하정우 초대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 발탁되기 전인 지난달 말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에 나와 AI 인재들의 국내외 급여 차이를 묻는 진행자의 말에 이 같이 답했다. 그는 당시 국내 AI 인재들의 경우 급여뿐 아니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협업 기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같은 컴퓨팅 인프라, 창업 환경 등을 고려할 때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란 진단을 내놨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AI 대학원, AI 융합대학원,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 이런 것들로 제도적으로 많이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정말 뛰어난 인재를 양성한 것까진 좋은데 과연 이분들이 한국에 남아 있느냐라고 한다면 경쟁력이 좋은 미국으로 많이 간다"고 설명했다.
국내 AI 인재 중위연봉, 3300만~6000만원 수준
실제로 AI 인재를 찾는 수요는 전 세계적 추세이지만 국내에선 연봉을 포함한 전반적인 처우가 비교적 열악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18일 커리어 플랫폼 잡플래닛이 고용보험을 토대로 분석한 AI 관련 직군의 중위연봉은 1~5년차 기준 3300만~6000만원대를 나타냈다.
AI 모델 구축에 직접 참여하는 머신러닝 엔지니어 1년차의 중위연봉은 3360만원으로 조사됐다. 3년차는 4577만원을 나타냈고 실무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5년차는 6000만원을 기록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머신러닝 엔지니어보다 소폭 낮게 나타났는데 1년차 3316만원, 3년차 4148만원, 5년차 5495만원으로 확인됐다.
AI 관련 직군으로 폭넓게 분류되는 데이터 분석가는 같은 연차를 기준으로 3000만원·3478만원·4011만원, 데이터 엔지니어는 2960만원·3575만원·3960만원 순이었다.
비AI 직군 개발자와 비교하면 이들의 중위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긴 하다. 백엔드 개발자는 1년차가 3090만원, 3년차가 3560만원으로 나타났고 5년차의 경우 4260만원을 기록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각각 3060만원·3558만원·4380만원 순으로 조사됐다.
김지예 잡플래닛 최고운영책임자(COO·이사)는 "보통 개발자로 분류되는 직군 안에서도 AI 직군 신입은 비AI 직군에 비해 평균 10% 이상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며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AI 산업이 특정 연구개발(R&D)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폭발적으로 확장되면서 주니어 연봉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5년차 전후로는 연봉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면서도 "AI를 활용한 툴이 고도화되고 있는 데이터 엔지니어링 측면에서는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8000만원대 가장 많이 포진"…미·중에 밀려
잡플래닛 분석 결과는 중위연봉을 기준으로 한 만큼 실제 비AI 직군과의 급여 차이는 이보다 더 크다는 설명이다. 김태훈 서강대 메타버스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기업 기준 AI 직군은 연봉 8000만원대로 이 구간에 AI 직군이 많이 포진돼 있다"며 "인센티브까지 들어가면 평균 1억이고 많이 받으면 2억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해외 AI 인재들과 비교하면 국내 급여가 확연하게 대조된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3~5년 경력의 중급 AI 엔지니어 평균 연봉은 약 14만8000달러(약 2억280만원)에 이른다.
김 이사는 "국내 AI 직군의 연봉은 영미권은 물론 가까운 중국 시장과 비교해 봐도 경쟁력이 약하다"며 "한때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국내 인재들을 고액 연봉으로 데려갔던 일이 AI 직군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에선 민관 공동 투자를 통해 AI 인재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는 글로벌 선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스타트업이나 벤처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이 구축될 수 있다"며 "인력에 대한 투자를 기업 몫으로만 두기보다는 민관 모두의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GPU 등 인프라 확충 시급…"개발 환경 구축해야"
GPU 등 컴퓨팅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재 양성과 유치가 인프라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 충분한 규모의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어야 AI 인재들이 여러 실험을 통해 도전적인 시도를 이어가면서 혁신을 이뤄내고 역량을 쌓을 수 있는데 현상황은 이마저도 부족한 실정이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기를 수 없는 환경에선 인재들을 끌어들일 유인이 적다.
하 수석은 앞서의 라디오에서 "딥시크가 보유한 GPU가 5만장이 넘는데 그때를 기준으로 치면 한국에 있는 H100 이상급 GPU를 다 합한 것보다 훨씬 많다"며 "인적 자원 양성을 위해 필요한 게 인프라인데 GPU가 부족해서 게임용 GPU를 가지고 실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꼬집었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GPU 등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일본의 경우 GPU를 대량으로 구비해 기업들에게 저렴에게 제공하면서 인재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며 "이처럼 인재들이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인재 유출을 막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인재가 들여올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연내 GPU 1만장을 확보하고 '국가 AI컴퓨팅센터(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고성능 GPU 5만장을 확보하고 전국 단위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AI 직군 세액공제·정부지원 대출 등 혜택 필요"
하 수석이 걸림돌로 꼽은 또 다른 문제는 병역특례다. 현행 규정을 보면 박사급 인재들이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할 경우 1년간 병역지정업체인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때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은 정원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하 수석은 이 때문에 AI 인재들이 병역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서 대기업 등 환경이 잘 갖춰진 곳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언급한 'AI 산업 100조원 규모 민관 투자'가 AI 인재 확보에 필요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단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이종우 숙명여대 인공지능학부 교수는 "AI 관련 국부펀드가 해외 인재 유출을 막는 데 도움될 것"이라며 "현재 국부펀드 수익 배분 단계에 관한 논의는 빠져있는데 수익 배분 모델이 정립되는 순간 국부펀드로 이익을 보는 회사로, 역류해 나갔던 인재들이 환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질적 소득을 보장하는 지원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연봉을 10억 주지 않는 한 세금 등으로 실질적인 소득 증가를 체감할 수 없다"며 "AI 직군이 많이 포진된 연봉 8000만원대의 경우 정책지원 대출을 받지도 못한다. AI 직군 한해서 세액공제, 대출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 그들을 붙잡을 수 여건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