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서쪽 바덴바덴. 우리말로 ‘목욕, 목욕’이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고대 로마 때부터 지금까지 유럽 최고의 온천장으로 명성이 높다. 약 2000년 전부터 유럽 귀족과 왕들이 바덴바덴을 찾아 온천을 즐겼다. 바덴바덴의 또 다른 별칭은 ‘축제의 도시’다. 연중 최고 수준의 축제가 열리는데 하이라이트는 1주일씩 열리는 부활절(봄), 성령강림절(봄), 여름, 가을, 겨울 축제다. 계절마다 최소 한 편 이상의 오페라 작품과 클래식 콘서트가 줄을 잇는다.
축제의 도시가 된 배경은 유럽 여타 축제와는 사뭇 다르다. 1990년대 온천장의 명성이 시들해지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시민들이 나서서 극장을 지어 마을의 위상을 되살리자고 제안했다. 바덴시는 옛 중앙 기차역 부지를 무상으로 내놓고, 시민들은 십시일반 기부해 건물을 세웠다. 바로크 양식을 절충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중앙역 청사는 과거 모습 그대로 두고, 그 뒤에 초현대식 새 극장을 지었다. 지금의 ‘바덴바덴 축제극장’이 이렇게 탄생했다. 중앙역 매표소에서 공연 티켓을 사고, 개찰구를 통과해 콘서트장에 입장하면 현대식 극장에서 최첨단 공연이 열리는 식이다.
이 극장은 1998년 4월 18일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평화를 위한 월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막을 올렸다. 기차마저 멈춘 역에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고, 10여 년 만에 바덴바덴 페스티벌은 세계 굴지의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100년 넘는 음악 축제가 수두룩한 유럽에서 바덴바덴이 단 10년 만에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한 장의 DVD에서 비롯했다. 2007년 공연 실황을 녹화해 ‘바덴바덴 오페라 갈라’라는 DVD를 출시했는데,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등 당대 최고의 성악가가 총출동했다. 전 세계 클래식과 오페라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순간이었다.
바덴바덴 페스티벌은 단 한 푼의 정부 지원금도 받지 않는다. 대부분 유럽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이 국가나 지방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것과 대비된다. 100%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유럽 최초의 민영 극장이어서 정부는 페스티벌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전체 예산의 60%는 티켓 판매로 충당하고, 일부는 DVD 판매와 대관 등의 수익으로 메운다. 공연이 없을 때 극장은 최고의 녹음 및 녹화 스튜디오가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이곳에서 음반을 녹음했다.
모든 계절 축제가 벌어지는 바덴바덴이지만 그중 하이라이트는 봄에 열리는 ‘부활절 페스티벌’이다. 원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아이디어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부활절 음악제와 여름 페스티벌 사이에 열리던 ‘성령강림절(부활절로부터 50일째) 축제’가 원조다. 1989년 카라얀이 별세한 뒤 축제 관객이 줄어 예산 절감을 위해 성령강림절 음악제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생기자, 바덴바덴이 이를 유치했다. 1993년부터 ‘성령강림절 음악제’는 잘츠부르크에서 바덴바덴으로 장소를 옮겼고, 5년 뒤 본격적으로 바덴바덴을 사계절 음악축제의 도시로 만드는 토대가 됐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