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차역에 세운 꿈의 극장…마을은 축제의 성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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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다시 선보이고 있다.  ⓒBettina Stoess

4월 25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다시 선보이고 있다. ⓒBettina Stoess

독일 남서쪽 바덴바덴. 우리말로 ‘목욕, 목욕’이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고대 로마 때부터 지금까지 유럽 최고의 온천장으로 명성이 높다. 약 2000년 전부터 유럽 귀족과 왕들이 바덴바덴을 찾아 온천을 즐겼다. 바덴바덴의 또 다른 별칭은 ‘축제의 도시’다. 연중 최고 수준의 축제가 열리는데 하이라이트는 1주일씩 열리는 부활절(봄), 성령강림절(봄), 여름, 가을, 겨울 축제다. 계절마다 최소 한 편 이상의 오페라 작품과 클래식 콘서트가 줄을 잇는다.

축제의 도시가 된 배경은 유럽 여타 축제와는 사뭇 다르다. 1990년대 온천장의 명성이 시들해지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시민들이 나서서 극장을 지어 마을의 위상을 되살리자고 제안했다. 바덴시는 옛 중앙 기차역 부지를 무상으로 내놓고, 시민들은 십시일반 기부해 건물을 세웠다. 바로크 양식을 절충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중앙역 청사는 과거 모습 그대로 두고, 그 뒤에 초현대식 새 극장을 지었다. 지금의 ‘바덴바덴 축제극장’이 이렇게 탄생했다. 중앙역 매표소에서 공연 티켓을 사고, 개찰구를 통과해 콘서트장에 입장하면 현대식 극장에서 최첨단 공연이 열리는 식이다.

바덴바덴 페스티벌 극장 전경.  ⓒ Andrea Kremper

바덴바덴 페스티벌 극장 전경. ⓒ Andrea Kremper

이 극장은 1998년 4월 18일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평화를 위한 월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막을 올렸다. 기차마저 멈춘 역에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고, 10여 년 만에 바덴바덴 페스티벌은 세계 굴지의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100년 넘는 음악 축제가 수두룩한 유럽에서 바덴바덴이 단 10년 만에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한 장의 DVD에서 비롯했다. 2007년 공연 실황을 녹화해 ‘바덴바덴 오페라 갈라’라는 DVD를 출시했는데,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등 당대 최고의 성악가가 총출동했다. 전 세계 클래식과 오페라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순간이었다.

옛 기차역에 세운 꿈의 극장…마을은 축제의 성지가 됐다

바덴바덴 페스티벌은 단 한 푼의 정부 지원금도 받지 않는다. 대부분 유럽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이 국가나 지방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것과 대비된다. 100%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유럽 최초의 민영 극장이어서 정부는 페스티벌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전체 예산의 60%는 티켓 판매로 충당하고, 일부는 DVD 판매와 대관 등의 수익으로 메운다. 공연이 없을 때 극장은 최고의 녹음 및 녹화 스튜디오가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이곳에서 음반을 녹음했다.

모든 계절 축제가 벌어지는 바덴바덴이지만 그중 하이라이트는 봄에 열리는 ‘부활절 페스티벌’이다. 원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아이디어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부활절 음악제와 여름 페스티벌 사이에 열리던 ‘성령강림절(부활절로부터 50일째) 축제’가 원조다. 1989년 카라얀이 별세한 뒤 축제 관객이 줄어 예산 절감을 위해 성령강림절 음악제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생기자, 바덴바덴이 이를 유치했다. 1993년부터 ‘성령강림절 음악제’는 잘츠부르크에서 바덴바덴으로 장소를 옮겼고, 5년 뒤 본격적으로 바덴바덴을 사계절 음악축제의 도시로 만드는 토대가 됐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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