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정문 공개 전이어서 지노위 판단 근거를 알 수는 없지만,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사안임에는 분명하다. 자칫 수많은 기업, 기관, 학교 등이 외주 업체에 소속된 구내식당 종사자들과 무더기 교섭에 나서야 할 수도 있어서다. 흔히 ‘노란봉투법’이라 부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3월 시행된 후 산업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장면 중 하나다.
이미 예고됐던 산업 현장의 혼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원청과 하청 노조 간 교섭 갈등은 시장경제를 지탱해 온 ‘계약’의 의미가 퇴색됐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노봉법에서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특정 조건에 해당하면 회사를 ‘사용자’로 보고 교섭 의무를 부여한다. ‘근로 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조건에서 ‘실질적’이 뭔지, ‘구체적’이 뭔지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하청 노조들이 교섭 요구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노봉법 시행 한 달 만에 1011개 하청 노조가 372개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교섭을 신청했다. ‘안 하는 게 손해’, ‘밑져도 본전’ 등의 인식이 퍼지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잇따라 사용자로 인정되자 정부도 화들짝 놀랐다. 이후 공공부문에 대해서만 법안 수정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한 편의 코미디 같다. “장관 나와라”는 안 되고, “회장 나와라”는 된다는 건가.
정규직 노조 역시 노봉법으로 파업에 나설 명분이 대폭 확대됐다. 1일 파업에 들어간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임금 인상안과 함께 기업 분할이나 인수합병(M&A) 등을 결정할 때 자신들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단체협약 개정안도 요구하고 있다. 핵심적인 경영 판단에 노조가 개입하겠다는 뜻인데, 노봉법이 사업 통폐합 등을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시켰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동계로서는 안 통하는 곳이 없는 ‘치트키’ 하나를 확보한 셈이다.‘노사 갈등 유발법’ 오명 벗게 보완을 지난달 말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낸 ‘2026 국내 경영환경 인사이트 리포트’를 보면 기업 71%가 “노동정책 및 노동시장 유연성”을 개혁 우선순위로 꼽고 있다. 보고서는 노봉법 영향에 대해 “분쟁 발생, 운영 차질, 복잡한 도급·하도급 구조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나라에 누가 아시아 지역본부를 설립하고, 새로운 설비 투자에 나서겠나.
국회도, 정부도 아직 늦지 않았다. ‘약자 보호’라는 법안의 취지를 지키고, ‘노사 갈등 유발법’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지금이라도 보완하면 된다. 입법 시 혼란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현장의 아우성을 목격하고도 모르는 체하는 건 차원이 다른 직무유기다. 우리 당이 밀어붙인 법안이라고, 장관이 민노총 위원장 출신이라고 버틸 일이 아니다.
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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