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이젠 초6부터 “엄카 대신 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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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지갑에 현금을 좀 넣어 다니지만 좀처럼 쓸 일은 없다. 신용카드나 간편결제, 계좌이체로 대부분 해결된다.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편의점이나 생활잡화점,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능숙하게 카드를 쓱 내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론 ‘엄카(엄마 카드)’, ‘아카(아빠 카드)’를 빌려 쓰는 것이지만, 이젠 초등학교 6학년도 본인 명의의 ‘내카’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신용카드는 만 19세 이상 성인만 발급할 수 있었지만, 4일부터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발급 가능 연령이 크게 낮아졌다. 부모가 신청하면 만 12세 이상 자녀 명의로 ‘가족카드’를 발급할 수 있다. 그동안 일부 카드사에서 혁신금융서비스로 제한적으로 운영하던 것을 전면 허용했다. 무분별한 소비를 막기 위해 한도는 월 10만 원(부모 허락 시 최대 50만 원)으로 제한된다. 문구점, 편의점, 학원, 병원 등 실생활에 밀접한 업종에서만 쓸 수 있고, 유흥·사행성 업종의 결제는 차단된다.

▷원칙적으로 신용카드를 가족을 포함한 타인에게 빌려주는 것은 여신법과 카드사 약관 위반이다. 분실·도난으로 부정 사용이 발생해도 책임소재를 따지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매번 용돈을 현금으로 주는 대신 ‘엄카’를 빌려주는 게 관행처럼 돼 왔다. 금융당국은 자녀들이 음성적으로 부모 카드를 쓰는 대신, 부모의 통제 아래 투명하게 소비를 관리하는 구조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본인 명의의 카드 사용을 통해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 ‘신용’의 개념을 일찍 익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당장 통장에 잔액이 없어도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경험은 아직 자제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겐 치명적인 유혹이다. 신용카드의 본질은 결국 ‘빚’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용돈 당겨쓰기’의 단맛에만 일찍 길들여질 우려가 있다. 아이들은 ‘내 카드로 내가 샀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엔 부모의 신용에 기대는 구조다. 내가 맘대로 써도 결국 누군가 갚아줄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부터 형성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통장 잔액 한도 내에서만 쓸 수 있는 체크카드만으로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카드가 빚이란 사실을 깨닫기까지 우리 사회는 엄청난 수업료를 치렀다. 소득 없는 대학생, 저신용자 등에게 무분별하게 카드를 남발했다가 수백만 명의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카드를 긁는 행위가 훗날 어떤 책임으로 돌아오는지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첫 신용카드가 독배가 될지, 건강한 경제관념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될지는 결국 카드를 허락한 어른들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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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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