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보다 비싸고 불편한데 '인기'…'힙한 장보기' 뭐길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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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광장·잔디사랑방·잔디언덕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 /사진=박상경 기자

지난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광장·잔디사랑방·잔디언덕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 /사진=박상경 기자

"사장님, 일본 순무는 강화 순무랑 어떤 게 달라요? 복숭아처럼 단맛이 나나요?" 지난 2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의 한 매대 앞. 낯선 채소를 집어 든 소비자가 맛과 조리법을 묻자 "매운맛이 거의 없고 은은하고 시원한 단맛이 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다른 매대에선 아티초크를 두고 "어떻게 손질해 먹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온라인 장보기였다면 검색창과 리뷰로 대신했을 정보가 이곳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대화'가 오가는 모습이 연출됐다.

유통시장 중심축이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가운데 오히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가장 아날로그 방식의 장터가 십수 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에서 온라인이 차지한 비중은 60.6%로, 온라인 유통업체가 조사 대상에 포함된 이후 처음 60%대에 진입했다. 같은 달 온라인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8.1% 늘어났지만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매출은 각각 15.2%, 8.6% 줄어들면서다.

이처럼 온라인 장보기가 대세인 흐름 속에서 '마르쉐'에 사람들이 몰리는 장면은 역설적이다. 마르쉐는 생산자가 직접 나와 소비자에게 먹거리와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장터다. 소비자는 정해진 날짜와 장소를 맞춰 방문해야 하고, 원하는 음식 재료가 없을 수 있다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가격도 온라인 최저가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2012년부터 십수 년째 장터가 열릴 때마다 방문객이 줄을 선다. 오프라인 유통이 가격과 편의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생산자와의 소통'…장보기를 나들이로 바꿨다

아티초크, 일본 순무, 딜 등을 판매하는 '마콩농장' 앞에 손님들이 가득하다. /사진=박상경 기자

아티초크, 일본 순무, 딜 등을 판매하는 '마콩농장' 앞에 손님들이 가득하다. /사진=박상경 기자

마르쉐의 경쟁력은 경험에 있다. 소비자는 생산자에게 순무의 맛을 묻고, 아티초크 손질법을 배운다. 가격표와 상품 설명에서 그치던 정보 전달이 이곳에서는 대화로 이뤄지며 장보기가 단순 구매 행위를 넘어 식자재를 배우고 생산자와 관계를 맺는 과정으로 바뀌는 셈이다.

대형 유통망에서 다루기 어려운 상품이 오히려 장터의 차별화 요소가 된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 온라인몰과 대형마트 등은 일정한 규격, 안정적인 물량, 예측 가능한 수요를 갖춘 상품을 주로 취급하기에 소량 생산되는 다품종 농산물이나 비규격 작물, 소비자에게 설명이 필요한 낯선 식자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날 장터에는 아티초크, 래디시, 딜, 일본 순무, 와일드 루꼴라, 에파소테 등 일반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품목이 여럿 선보였다. 대형 유통망에서는 회전율을 예측하기 어렵고 관리 비용은 많이 들어 까다롭게 여기는 상품이지만, 이곳에서는 희소성과 발견의 즐거움이 된다. 기존 유통망에서는 비효율로 치부되던 것이 하나의 현장 경험으로 탈바꿈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2030에겐 '힙한 장보기'…오프라인 유통의 경쟁력

시중 유통 매대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이색 채소'들. /사진=박상경 기자

시중 유통 매대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이색 채소'들. /사진=박상경 기자

이 때문에 마르쉐에서의 장보기는 주말 나들이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다. 4050 세대와 가족 단위 방문객은 매대 사이를 천천히 돌며 낯선 채소를 구경하고, 생산자와 긴 대화를 나눈 뒤 구매를 결정한다. 농산물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관계를 맺는 커뮤니티로 기능하면서 소비자 충성도 역시 높아진다.

소셜미디어(SNS)에 익숙한 2030세대도 마르쉐를 '힙한 장보기' 경험으로 소비하고 있다. 도심 속 장터에서 발견한 낯선 채소, 농부와의 대화 등은 이색적인 사진과 짧은 후기로 SNS에 공유된다. 현장에서 만난 2030 자원봉사자들은 "SNS에서 본 도심 속 장터 분위기가 궁금해 찾아왔다"고 입을 모았다. 커뮤니티 기능을 더한 오프라인 장터의 지속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온라인몰이나 대형마트를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볼 순 없다. 규모와 가격, 편의성 면에서 경쟁이 어려운 탓이다. 그러나 이 장터에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은 발견과 대화, 관계와 체류 경험이 온라인에 맞설 수 있는 오프라인 유통의 경쟁력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마르쉐 관계자는 "마르쉐는 빠르지도 저렴하지도 않다"면서도 "새로운 농산물을 발견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배우는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가 판매자인 농부와 친해져 아예 농사를 배우게 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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