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인들 '명품 아니면 다이소'…이례적 현상 [권 기자의 장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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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4.21 06:00 수정2026.04.21 06:15

샤넬이 입점한 서울의 한 백화점 앞 전경. /연합뉴스

샤넬이 입점한 서울의 한 백화점 앞 전경. /연합뉴스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소비 패턴이 빠르게 양극단으로 갈리고 있다. 대형마트에선 1000원대 생필품과 5000원 이하 PB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반면, 백화점에선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 명품과 하이주얼리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가성비’와 ‘프리미엄’으로 소비가 쪼개지는 전형적인 K자형 양극화가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다이소만 찾는 시민들… 마트도 '초저가 공세'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5000원 이하 가격대에 맞춘 초저가 PB ‘5K프라이스’를 중심으로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출시 이후 지난달 127종을 추가하며 총 353종으로 늘었다. 두부(400g 980원)와 콩나물(400g 980원) 등은 수백만 개씩 팔리며 장보기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단순 할인 상품이 아니라 상시 저가 구조를 구축해 소비를 묶어두겠다는 전략이다.

가격 경쟁력만 앞세운 것도 아니다. 이마트는 중국 공장을 발굴해 4980원 스팀다리미를 내놓고, 인도산 원료를 활용한 감자튀김 등 해외 직소싱 상품도 확대하고 있다. 단순 초저가가 아니라 품질 검증을 거친 상품으로 PB 전반의 신뢰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5K프라이스는 이마트에브리데이까지 확산되며 구매 저변을 넓히고 있다.

홈플러스는 행사형 초저가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오는 22일까지 진행한 할인 행사에서 PB ‘심플러스’ 아메리카노(500ml), 콩나물, 감자칩, 보리차 등을 1000원에 내놨다. 국산콩 두부는 3490원, 태국산 계란 30구는 5890원, 서해안 꽃게는 100g당 990원에 판매하며 신선식품까지 초저가 경쟁을 확대했다.

초저가 소비는 이미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다이소는 지난해 매출 4조5363억원, 영업이익 4424억원으로 각각 14.3%, 19.2% 증가했다. 유니클로(1조3500억원)·탑텐(9000억원)·스파오(6000억원)·무신사스탠다드(4700억원)·에잇세컨즈(3000억원) 등 가성비 의류로 손꼽히는 주요 SPA 브랜드 매출도 합산 3조원을 돌파했다. 가격을 낮춘 ‘박리다매형 가성비 전략’이 전체적인 소비 흐름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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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매출은 '쑥쑥' … "명품 소비 한국만 커져"

반면 고가의 사치품 소비도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국내 3대 백화점(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의 지난달 하이주얼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평균 59.6% 증가했다. 연 매출 800억원 이상 명품 브랜드 한국법인 14곳의 지난해 매출은 9조27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1% 늘었다.

글로벌 명품 수요가 둔화되는 가운데서도 한국 시장만 성장하는 이례적 흐름이다. 에르메스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한국 매출만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글로벌 명품 수요가 둔화되는 상황에서도 한국 시장에서만 성장세를 이어가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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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소비 양극화는 소득·자산 격차 확대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4분기 소득 5분위 배율은 5.59배로 1년 전보다 높아지며 분배 상황이 악화했다. 집값과 주가 상승으로 자산 쏠림도 심해졌다. 한국은행·금융감독원 등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 최상위층의 순자산 점유율은 46.1%로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면서 ‘중간 가격대’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내수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민간소비는 국내총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소비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소비 여력을 방어하지 못할 경우 내수 기반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제는 가성비 상품과 최고가 상품만 팔리고 중간 가격대 제품은 설 자리가 줄고 있다”며 “고물가가 길어질수록 초저가 PB와 프리미엄 상품 중심으로 소비가 더 양극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권 기자의 장바구니는 기자가 직접 담은 현장 체감 물가와 식품·유통 트렌드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 등을 오가며 실제 장바구니에 담긴 가격 변화를 추적하고, 신제품 출시와 소비 흐름까지 함께 짚습니다. 단순 가격 나열이 아니라 '왜 올랐는지, 무엇이 팔리는지, 소비자는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풀어내는 데 초점을 둡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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