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 대기 130팀’… MZ의 ‘힙푸드’ 평양냉면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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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면옥·을지면옥·을밀대 노포마다 긴 줄… 역대급 폭염에 비싸도 먹는다

서울 낮 기온이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한 7월 8일 서울 마포구 을밀대(오른쪽)와 중구 우래옥 풍경.우래옥 대기 시스템에 ‘130팀’이 대기 중이라는 안내가 떠 있다. 이상윤

서울 낮 기온이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한 7월 8일 서울 마포구 을밀대(오른쪽)와 중구 우래옥 풍경.우래옥 대기 시스템에 ‘130팀’이 대기 중이라는 안내가 떠 있다. 이상윤
7월 8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마포구 평양냉면집 ‘을밀대’ 앞엔 74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낮 최고기온 37.8℃로, 기상 관측 사상 7월 초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날이었다. 50대 후반 김모 씨가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기자 앞으로 다가왔다. 미리 와 줄을 서 있던 친구와 합류하는 참이었다. “공덕역에서 걸어왔더니 온몸이 다 젖어버렸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굵은 땀방울이 땅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또래보다 다소 일찍 은퇴한 두 친구는 오랜만에 점심 약속을 잡은 것이라고 했다.

“을밀대 줄 서는 거 모르는 사람 있나요. 각오하고 나왔지만 생각보다 줄이 더 기네요.”

김 씨의 푸념이다. 그는 “여기를 20년 넘게 다녔는데, 요즘 2030 젊은이들까지 평양냉면 맛을 알아버려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기다리는 건 익숙… 그런데 어른도 많네요”
이날 을밀대 앞에 줄을 선 사람 중에도 3분의 1 정도는 20대로 보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랑 같이 왔다는 한 대학생은 “대기 줄에 어른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했다.

“요즘 인기 있는 곳에 가면 다 줄을 서잖아요. 식당이든 카페든 갤러리든. 주위에 평냉(평양냉면) 얘기를 하는 친구가 많아서 먹어보러 왔는데, 어른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웃으며 말하는 얼굴이 더위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평양냉면은 심심한 육수와 뚝뚝 끊기는 메밀면이 특징인 여름 요리다. 자극적인 함흥냉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호 계층이 좁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유명 방송 프로그램 등에 조명되며 빠르게 대중화됐다. 최근엔 인스턴트 제품과 밀키트까지 출시될 만큼 인기다. ‘평냉 마니아’를 자처하는 청년도 적잖다. 을밀대 물냉면 가격은 1만6000원. 지난해보다 1000원 올랐지만 인기에는 전혀 영향이 없어 보였다. 곧이어 서울 중구 우래옥으로 향했다. 1946년 문을 연 이곳은 서울의 평양냉면 명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낮 12시 정각, 우래옥 앞에 쳐놓은 그늘막에는 20여 명이 모여 앉아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땡볕 아래 길게 줄이 늘어섰던 을밀대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우래옥은 2022년 매장 정문 앞에 대기 시스템을 설치했다. 기기에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대기번호를 발급하고, 앞에 남은 인원 정보를 카카오톡으로 알려주는 방식이다. 기기 옆 커다란 스크린에는 ‘현재 130팀 대기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늘막에 있던 80대 남성은 “기계에 전화번호 넣는 거 정도는 누구나 하잖아”라면서 “줄 안 서고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니까 훨씬 편해”라고 말했다.

1만6000원 가격에도 인파 붐벼
우래옥 단골들에 따르면 시스템 도입 초기에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원격 대기’를 하는 것도 허용됐다. 하지만 젊은 층에게만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와 곧 금지됐다고 한다. 평양냉면이 아무리 폭넓은 세대의 사랑을 받아도 여전히 주류 고객은 장노년층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2022년 냉면 가격을 1만6000원으로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던 우래옥은 3년째 같은 값을 받고 있다.

투명할 만큼 맑은 육수와 고춧가루 고명이 특징인 필동면옥 냉면.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접시만두 맛도 일품이다. 이상윤

투명할 만큼 맑은 육수와 고춧가루 고명이 특징인 필동면옥 냉면.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접시만두 맛도 일품이다. 이상윤
식당 두 곳을 돌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12시 30분. 오전 11시 정도부터 시작하는 평양냉면집 ‘피크타임’이 한풀 꺾일 시간이었다. 그러나 서울 중구 필동면옥에는 여전히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맨 앞에 선 청년은 “그래도 주말보다 대기시간이 짧아 일부러 평일에 온다”고 했다. “이 자리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묻자 “35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 저 끝에 서시면 1시쯤에는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응원하듯 건네는 말에 힘입어 맨 뒤로 갔다. 그런데 웬걸, 2~3명씩 짝지어 줄을 서 있던 사람 중 여섯 팀이 순식간에 식당으로 들어갔다. 머지않아 두 팀, 연이어 세 팀이 사라졌다. 줄 선 지 17분 만에 에어컨이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 실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필동면옥 관계자는 “12시 반 정도 되면 아침부터 서둘러 온 사람들이 대충 다 식사를 마친다”며 “그때 오면 확실히 덜 기다린다”고 귀띔했다. 냉면 가격은 1만5000원. 자리에 앉고부터 음식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7분이었다. 시원한 육수를 들이켜니 한여름 더위가 단숨에 잊히는 듯했다. 오후 1시 17분, 식당 밖을 나설 때는 딱 1명만 양산을 쓴 채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평양냉면 맛집 하면 반드시 언급되는 을지면옥은 지난해 종로구 5층 건물로 장소를 옮겨 재개장하며 대기시간이 크게 줄었다. 2인석도 많아져 붐비는 점심시간에 ‘혼밥’을 해도 눈치가 덜 보인다. 저녁에는 냉면 육수를 안주 삼아 한 잔 기울이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7월 8일 저녁 7시, 기습 폭우를 뚫고 들어간 을지면옥에서 1만5000원짜리 물냉면 하나, 소주 한 병을 주문하는 20대 남성을 만났다. “퇴근길 가볍게 반주하기 딱 좋은 메뉴”라고 말하는 그의 옆 테이블에서는 중년 직장인 3명이 편육을 앞에 놓고 인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7호에 실렸습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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