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칼 오르프(1895~1982)의 '카르미나 부라나'는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음악이다. 이 작품이 20세기 클래식 음악을 넘어 인류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클래식 특유의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러운 권위'를 완전히 부수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바흐나 베토벤 시대의 정교한 멜로디와 복잡한 화성학적 대위법 대신 오르프는 의도적인 단순함과 타악기를 전면에 배치한 '원시적 리듬'을 택했다. 지적인 분석 없이도 처음 듣는 이의 심장 박동을 즉각적으로 빨라지게 만드는 직관적인 파괴력,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음악사적 위대함이다.
지난 21일, 서울시합창단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5년 만에 선보인 이 무대의 무게감은 그래서 더욱 남달랐다. 대규모 합창과 풀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거대한 음향의 에너지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관객을 압도했다.
현대적인 연출은 박물관에 갇혀 있던 중세 방랑시인들의 텍스트를 오늘날 우리 삶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부활시키는 결정적 요소였다. 여기에 소프라노 강혜정, 바리톤 염경묵, 테너 강동명이 함께 해 독창 대목을 연주했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묘미는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은 '종합예술'의 성취에 있었다. 다이내믹한 음악에 맞춰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윤별발레단의 합류는 극적 긴장감을 한층 더했다. 소리의 파도 위로 무용수들의 몸짓이 얹어질 때마다 무대 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사운드가 터져 나오는 순간에는 짜릿한 시청각적 폭발을 경험할 수 있었다.
'카르미나 부라나'가 가진 진정한 가치는 이처럼 인간 삶의 날것 그대로를 담은 메시지에 있다. 오르프가 발굴한 중세 시집의 내용(라틴어와 중세 독일어로 돼 있다)은 고결한 종교 음악과 거리가 멀다.
"운명은 야속하다"는 탄식부터, 술집에서의 방탕함, 타오르는 세속적 욕망과 쾌락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공연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내면의 희로애락을, 때로는 난폭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품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 정점에 달한 대목은 단연 제2부 '선술집에서' 등장하는 구워진 백조의 노래, '일찍이 내가 살았던 호수(Olim lacus colueram)'였다. 한때 호수를 누비던 백조가 인간의 식탁 위 구이 신세가 되어 부르는 이 기괴하고도 서글픈 노래는 테너의 극단적인 진성 고음과 익살스러운 독창을 통해 인간의 식탐과 백조의 변덕스러운 운명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진지함과 희화화를 넘나드는 이 독특한 울림은 극의 입체감을 더하는 신의 한 수였다.
'구워진 백조의 노래'가 만들어낸 기괴한 유쾌함은, 곧이어 등장하는'나는 수도원장이시다(Ego sum annas)'대목에서 날카로운 풍자와 희화화의 정점을 찍었다. 술과 노름에 빠져 타락한 수도원장의 모습을 통해 중세 종교의 부패를 해학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바리톤의 과장되고 익살스런 독창이 욕망에 현혹된 인간의 본성을 재치있게 폭로했다.
이 공연의 대표곡이자 후대의 한스 짐머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 음악 감독들에게 지대한 영감을 준 '오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는 무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완벽한 수미쌍관을 이뤘다. 강렬한 팀파니 소리와 대합창은 인간이 운명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냉혹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도 피어나는 삶의 희열, 슬픔, 사랑의 감정들은 서울시합창단의 세밀한 앙상블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기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은 30여년 전 처음 이 곡을 국립발레단의 무대로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그대로 소환해 준 뜻깊은 시간이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 동안 클래식을 바라보는 시선도 무대를 즐기는 감각도 변했지만 좋은 음악이 주는 본질적인 전율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웅장함과 대중성, 그리고 원시적인 생명력까지. 서울시합창단의 무대는 30년 전의 기억에 세련된 현대적 감각과 시네마틱한 웅장함을 덧입혀 지루한 클래식의 벽을 1초만에 부숴버렸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4 hours ago
2



![[여기는 칸] 자유와 욕망 다룬 애니메이션...방구석 1인 제작자, 칸을 홀리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605/01.44378716.1.jpg)
![[책마을] 어떤 회사들은 도덕적 우월감으로 화장을 한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605/AA.44383598.1.jpg)
![[책마을] "피카소 할아버지는 흡혈귀 같은 사람"](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책마을] '나태주 시인 딸' 나민애 교수, '사춘기 엄마의 오장육부' 6위](https://img.hankyung.com/photo/202605/AA.44383601.1.jpg)



!['통한의 극장골 실점 패배' 주승진 김천 감독 "뒷심이 부족했다" [전주 현장]](https://image.starnewskorea.com/21/2026/05/2026051714010261496_1.jpg)
![[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95〉 [AC협회장 주간록105] 마이클 잭슨 자산과 스타트업 경영](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5/04/news-p.v1.20260504.773e529e3f474adea55b425cf6daf8c2_P3.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