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사전 - 월드컵 특별편] 멕시코 프로레슬러 가면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명사. 1. 마스카라(Máscara) 2. (英) 레슬링 마스크 【예문】신성한 마스카라를 걸고, 두 루차도르는 링 위에서 맞붙었다.
마스카라다. 스페인어로 가면, 복면, 마스크 등을 뜻하는 단어다. 예상할 수 있듯이 영어의 마스크(mask)와 같은 의미다. 레슬러들이 쓰는 가면만 지칭할 경우 루차도르 마스카라(Luchador máscara)라고 쓴다. 프로레슬러들이 쓰는 레슬링 마스크(wrestling mask)의 하위 개념이기도 하다. 마스카라는 동물, 신, 고대 영웅 등 다양한 이미지에서 따온 화려한 색과 디자인으로 만든다.
마스카라를 설명하려면 멕시코 전통의 프로레슬링, 루차 리브레(Lucha Libre)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멕시코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스포츠이자 본고장을 넘어 중남미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레슬링이다.
루차 리브레는 스페인어로 ‘자유로운 싸움·대결’을 뜻한다. ①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 마스카라와 ② 공중살법(空中殺法)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기술, 그리고 ③ 영웅과 악당의 대결 구도가 특징이다. 루차 리브레 선수로 뛰는 남성은 루차도르(Luchador), 여성은 루차도라(Luchadora)라고 부른다.
1933년 장교 출신 세무 공무원인 살바도르 루테로트(1897~1987)가 미국 텍사스에서 접한 프로레슬링을 모국에 전파한 것이 루차 리브레의 시작이다. 그는 멕시코시티를 근거지로 하는 레슬링 단체 EMLL(엠프레사 멕시카나 데 루차 리브레)를 설립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레슬링 단체 CMLL(콘세호 문디알 데 루차 리브레)의 전신이다.
마스카라 전통은 EMLL 출범 이듬해부터 시작됐다. 살바도르 루테로트가 미국에서 직접 영입한 창단 멤버이자 미주리 출신의 레슬러 한 명인 코빈 제임스 매시(1903~1979)는 원래 미국에서의 링네임인 사이클론 맥키(Cyclone MacKey)를 멕시코 식으로 바꾼 시클론 맥키(Cíclon Mackey)로 활동했다. 하지만 루테로트는 1934년 시클론 맥키에 검은색 가면을 씌우고 ‘가면 쓴 경이(라 마라비야 엔마스카라다 La Maravilla Enmascarada)’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이름 길다.
루차 리브레 최초의 가면 레슬러였던 그의 성공적인 (재)데뷔 이후 천부적인 프로모터 루테로트는 가면의 잠재력을 알아봤고, 이후 다른 가면 레슬러들을 속속 데뷔시켰다. 대(大)가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멕시코의 슈퍼스타, 루차 리브레의 전설 엘 산토(El Santo, 1917~1984)가 데뷔한 것도 이쯤이다. EMLL에서 데뷔했지만 큰 이목을 끌지 못하고 이내 떠난 그는 독립 단체에서 활약하다 1942년 은색 마스카라과 엘 산토라는 이름을 들고 친정으로 복귀한다. 엘 산토는 1946년 NWA(전미레슬링협회) 세계 웰터급 초대 챔피언으로 등극한 이래 4차례나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멕시코 국민 영웅으로 우뚝 선다.
그의 인기에 불을 지핀 것은 1948년 영원한 라이벌 블루 데몬(Blue Demon)의 등장이었다. 엘 산토는 블루 데몬과 함께 수십 편의 루차 리브레 영화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 스크린 안과 현실의 링 위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엘 산토는 스포츠 챔피언을 넘어 슈퍼 히어로이자 정의의 상징이 됐다. 그는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않고 레슬링으로 벌어들인 돈을 서민 구제 사업에 내놓는 등 선행을 이어갔다. 덕분에 멕시코인들에게 있어 그는 엘 산토(santo)라는 이름의 의미 그대로 성자(saint)의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엘 산토가 평생에 걸쳐 가면에 바친 헌신은 유명하다. 그는 루차도르로 활동한 42년 간 단 한번도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식사할 때에는 턱 부분이 개방된 식사용 마스카라를 착용했고, 공항 입국을 위해 가면을 벗을 때를 대비해 자신의 스태프와 별도로 입국 수속을 밟을 정도였다. 은퇴 이후에도 1년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겨온 그는, 한 방송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했다. 그리고 열흘 뒤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유언에 따라 그는 은색 가면을 쓴 채 땅에 묻혔다. 그는 로돌포 구스만 우에르타(Rodolfo Guzmán Huerta)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지만, 마지막에는 엘 산토로서 떠난 셈이다.
위대한 엘 산토는 마스카라에 가면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마스카라는 선수의 얼굴이자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이며, 신성한 상징이다.
덕분에 루차 리브레 업계에서는 라이벌 선수끼리 질긴 악연을 청산하기 위한 자신의 마스카라를 걸고 ‘끝장전’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루차스 데 아푸에스타스(Luchas de Apuestas)라고 부르는 이 시합에서 질 경우, 패배자는 마스카라를 벗어야 한다. 페널티가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한번 마스카라가 벗겨진 선수는 평생 마스카라를 쓰지 못하고 맨얼굴로 활동해야 한다.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오. 머리카락을 거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삭발빵(…)인 셈.
이제 루차 리브레와 마스카라는 레슬링을 넘어 멕시코 문화의 중요한 축이다. 멕시코 그 자체이기도 하다.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 경기와 행사장에서 루차도르 마스카라가 종종 등장하는 이유다.
시민운동가 슈퍼 바리오(본명 수페르바리오 고메스)는 루차 리브레 선수 출신으로 가면을 쓴 채 서민을 위해 투쟁했다. 그는 1985년 멕시코 대지진 당시 살 터전을 잃은 시민들을 대변해 정부 관료와 건축업자들과 협상을 끌어내며 주거지를 마련했다.
프라이 토르멘타(폭풍의 수도사)의 본명은 세르히오 구티에레스 베니테스(1945~). 그는 다부진 체격으로 20년 넘게 링 위에서 활약한 루차도르이자 가톨릭 신부다. 고아원을 운영하던 그는 2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매일 밤 황금색 가면을 쓰고 레슬러로 이중생활을 했다. 그는 1998년 은퇴와 함께 가면을 벗고 온전한 목회자의 삶을 이어갔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만든 영화가 잭 블랙 주연의 ‘나쵸 리브레’(2006) 되시겠다.
루차 리브레의 마스카라는 단순한 변장 도구가 아니다. 선수에게는 이름과 고향과 가족이 있는 범인(凡人)에서 특별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변신의 주술이다. 동시에 이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대중에게는 마스카라는 고단하고 척박한 현실을 버티게 만드는 희망과 용기의 상징이다.
“가면을 쓰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가면은 내게 힘을 주고, 명성을 줍니다. 가면은 마법 같은 것이죠. 그런데 가면을 벗으면, 나는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도 “안녕” 소리 한 번 못 듣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중략) 가면이 없으면 나는 나름의 고민을 안고, 울기도 하고, 때로는 괴로워하는 보통의 인간입니다. 내가 엘 이호 델 산토를 정말 존경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내가 더 존경하는 게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가면 뒤의 그 인간(the human being)입니다. 그 사람이 있기에 엘 이호 델 산토가 비로소 생명을 얻으니까요. 그리고 그 인간은, 또 다른 정체성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복면 레슬러 엘 이호 델 산토(El Hijo del Santo)가 ESPN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소회다. 1982년부터 2025년까지 43년간 현역으로 활동한 그는, 링네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위대한 엘 산토의 아들이다.
다음 편 예고 : 특별편이라 다음 편 예고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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