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창한 질문에 대해 조금이나마 답을 주지 않을까 싶은 내용을 소개하려 합니다. 지난 5월 중국 IT기업 알리바바의 15년 근속 직원이 퇴사하면서 인트라넷에 남긴 장문의 글인데요. 단기 성과주의, 관료주의, 내부 경쟁, 불분명한 전략, 지나친 마케팅 의존, 외부인력 맹신 등. 이른바 ‘대기업병’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으로 가득합니다. 이 글이 특히 화제가 된 건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이례적으로 감사하다는 답글을 남겼기 때문이었죠. “다시 초심으로”를 외치고 있는 거대 IT 기업 알리바바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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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의 롤러코스터와 대전환
먼저 알리바바가 어떤 기업인지부터 간단히 볼까요. 영어교사 출신인 마윈이 고작 50만 위안(9500만원) 자본금으로 B2B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를 설립한 게 1999년. 알리바바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자, 여전히 중국 최대(+아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죠. 아울러 중국 최대(+아시아 최대)의 클라우드컴퓨팅 기업이기도 합니다. 또 알리바바의 자체 AI 모델 ‘큐원(Qwen)’은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딥시크 같은 중국기업은 물론 오픈AI GPT나 구글 제미나이와도 경쟁하는 중이죠.
알리바바 퇴직자가 남긴 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사원증을 착용하는 게 불편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해, 지난 15년 동안 외부 평가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변했습니다. 사회에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오겠단 꿈을 잃었습니다. 우린 이제 KPI, 급여, 주식, 부동산에 대해 얘기합니다.언제부터 우리가 약해지기 시작했을까요. 개인적으론 2017년부터라고 여깁니다. 10년 넘는 고속 성장 뒤 2017년부터 국내 인터넷·모바일 사용자 성장은 거의 멈췄습니다. 그룹의 각 사업 부문은 전략적 투자에 나섰지만 대부분 인수합병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내부 혁신 사업도 거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음식 배달: 2018년 인수한 어러머(Ele.me) 1위, 2년 만에 메이투안에 역전당함
-음악 스트리밍: 2013년 샤미와 티엔티엔동팅 인수로 1위, 2021년 폐쇄
-비디오 플랫폼: 2016년 투도우 인수로 점유율 1위, 현재는 3위
-전자상거래: 2016년 동남아시아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라자다 인수, 현재는 쇼피에 뒤짐
외부 인력에 대한 맹신: 과거 알리바바가 위챗을 극찬하며 젊은 고위직을 대거 영입했을 때 그들은 무분별한 지시로 장기적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우리는 농담으로 ‘이 사람들은 상대편 스파이 아닐까’라고 말했죠. 그들은 대부분 스톡옵션 기간을 버티는 걸 목표로 한 채 단기적 업무에 집중했습니다.들개가 승리한다: 황소(높은 가치관을 가진 고성과자), 들개(가치는 무시하고 성과만 내는 직원), 토끼(회사 가치는 구현하지만 성과는 못 내는 직원). 과거엔 황소를 발굴하고 들개를 퇴치하고, 토끼를 개량하는 걸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적은 투자로, 더 빠르게, 더 큰 성과를 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문화는 들개를 승리하게 만듭니다. 신뢰가 감소하고 협력 비용이 커집니다.
불투명한 분배시스템: 성과 평가점수가 급여와 연결돼 있지만, 성과는 공개되지 않아서 관리자가 큰 재량권을 행사합니다. 이런 투명성 결여는 상사에 대한 충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전략의 불명확성: 최근 몇 년간 미래에 대한 전략이 명확하지 않았고 점차 사용자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위에서 아래로의 전달은 너무 추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려고 함: 과거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대세’가 이런 많은 ‘해야 할 일’을 지탱하는 기반이었습니다. 대세가 사라지자 이런 ‘해야 할 일’ 뒤에 숨은 비합리성이 비합리적인 업무 방식을 키웠습니다. 성장이 둔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직원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우린 여전히 적은 투자, 짧은 주기, 높은 목표를 추구합니다.
마케팅: 단기간에 적은 투자로 어떻게 성과를 낼까요. 정답은 마케팅입니다. 마케팅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면 지표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타겟 데이터 분석으로 ROI(광고지출 대비 수익률) 최적화. 성장이 멈췄다면? 새로운 지표 정의. 온갖 수단이 동원됐고, 장기적 제품 구축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습니다. 마케팅이 가져다주는 허황한 번영은 제품의 공허함을 가리곤 합니다.
관료주의: 많은 고위직은 현장에 내려가지 않고 산업을 깊이 이해하지 않습니다. 관료주의는 판단의 전문성 결여, 현실과 동떨어진 성과 요구를 초래합니다. 실제론 A를 원하지만 B를 하는 척하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여러 단계 보고로 시간을 허비하고, 결정 단계에선 망설이고 흐지부지됩니다.
고객 우선주의는 상사 우선주의에 밀립니다. 상사가 성과, 보너스, 스톡옵션, 승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익 메커니즘이 왜곡된 상황에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상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변질됩니다.
팀워크는 승자독식 체제로 변모합니다. 사업이 번영할 땐 팀워크가 상호이익을 가져왔지만, 외부 성장 공간이 제한되자 경쟁 방향이 외부에서 내부로 전환됐습니다. ‘들개’가 가장 이익을 얻게 됩니다.
변화 수용은 불명확한 전략을 은폐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잦은 인사, 변화하는 정책, 단기적이고 연속성 없는 KPI. 고위 관리자들은 자신의 전략 실패로 인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 계속 같은 문제를 반복합니다. 한명의 무능한 장군이 모든 군대를 지치게 합니다.
신뢰는 희귀해졌습니다. 결과만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약탈, 도둑질, 실적 조작, 허위보고가 일상화됩니다.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우위를 점합니다. 사전에 허세를 부려 자원을 차지하고, 중간에 데이터를 조작하며, 사후에 책임을 전가하는 세 가지 기술을 숙달한 사람들이 활개 칩니다.
열정은 좋은 인센티브 제도 하에서 발휘됩니다. 996(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은 실질적인 가치가 없습니다. 우린 육체노동자가 아닙니다. 창의성은 압박이 아닌 동기부여로 발휘됩니다. 큰 보상 아래에는 분명 용감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일이 가치 있다면 자연스럽게 초과근무를 할 것입니다.
성실함이란 농사 짓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유목 문명이 지배적이어서 가치 있는 업무엔 많은 사람이 몰리고, 가치가 사라지면 버려집니다.
이 글이 많은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지만,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회사가 문제를 직시하고 점차 나아지길 바랍니다. AI가 왔습니다. 이 시대를 받아들이세요. 회사가 푸른 하늘, 튼튼한 땅, 맑은 공기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스타트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참고로 이 글을 쓴 위안안은 퇴사 뒤 뉴질랜드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습니다. 그는 2~3년 전부터 이민을 생각했다는군요. 이 글이 화제가 된 뒤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어떤 기업이 새로운 성장을 포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알리바바는 과거에 너무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대기업병이 기업을 성장하지 못하게 만듭니다.”그럼, 이 글에 대한 회사 측 반응은 어땠을까요. 이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마윈 창업자가 내부 게시판에 “긴 글 감사하다. 정말 잘 썼다”라는 답글을 남겼단 점인데요. 마윈은 이어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람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알리바바의 발전에도 필연적인 여러 경로와 과정이 있습니다. 알리바바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며, 종종 다시 찾아와주세요.”
스타트업 사고방식, 창조의 DNA, 창업자의 자세. 의례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은 이를 위안안 글에 대한 답변처럼 여겼습니다. 적어도 AI 시대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내부 병폐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는 보인 거죠.
물론 최고위층이 선언한다고 해서 직원 수 12.4만명의 거대한 기업이 한 번에 바뀔 리는 없습니다. (참고로 2024년 말 직원 수 19.4만명이었지만 유통 자회사 매각으로 7만명 감소) 기업문화를 바꾼다는 건 상당히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죠. 알리바바가 더 많은 인재가 떠나기 전에 진짜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이제부터 지켜봐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7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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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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