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했던 기업은 어떻게 평범해지나…알리바바와 대기업병[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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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위대했던 기업은 어떻게 평범한 기업으로 변해갈까요. 한번 불꽃이 사그라든 기업은 어떻게 해야 그 불씨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요.

이 거창한 질문에 대해 조금이나마 답을 주지 않을까 싶은 내용을 소개하려 합니다. 지난 5월 중국 IT기업 알리바바의 15년 근속 직원이 퇴사하면서 인트라넷에 남긴 장문의 글인데요. 단기 성과주의, 관료주의, 내부 경쟁, 불분명한 전략, 지나친 마케팅 의존, 외부인력 맹신 등. 이른바 ‘대기업병’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으로 가득합니다. 이 글이 특히 화제가 된 건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이례적으로 감사하다는 답글을 남겼기 때문이었죠. “다시 초심으로”를 외치고 있는 거대 IT 기업 알리바바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IT 거대기업 알리바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자 중국 최대 클라우드컴퓨팅 기업이다. 알리바바 홈페이지

중국을 대표하는 IT 거대기업 알리바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자 중국 최대 클라우드컴퓨팅 기업이다. 알리바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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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의 롤러코스터와 대전환

먼저 알리바바가 어떤 기업인지부터 간단히 볼까요. 영어교사 출신인 마윈이 고작 50만 위안(9500만원) 자본금으로 B2B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를 설립한 게 1999년. 알리바바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자, 여전히 중국 최대(+아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죠. 아울러 중국 최대(+아시아 최대)의 클라우드컴퓨팅 기업이기도 합니다. 또 알리바바의 자체 AI 모델 ‘큐원(Qwen)’은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딥시크 같은 중국기업은 물론 오픈AI GPT나 구글 제미나이와도 경쟁하는 중이죠.

알리바바가 탄생한 자신의 항저우 아파트 ‘후판가든’에서 포즈를 취한 창업자 마윈. 소박한 이 아파트는 알리바바의 ‘초심’과 항저우의 ‘창업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알리바바 제공

알리바바가 탄생한 자신의 항저우 아파트 ‘후판가든’에서 포즈를 취한 창업자 마윈. 소박한 이 아파트는 알리바바의 ‘초심’과 항저우의 ‘창업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알리바바 제공
주식시장에서 알리바바의 정점은 2020년 10월. 시가총액 83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에 올라섰던 그때, 갑자기 파티가 끝납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 IPO가 될 거라던 금융 자회사 앤트파이낸셜 상장을 중국 정부가 취소시켜 버렸죠. 마윈 창업자의 은행 시스템 비판(“혁신 추세에 뒤떨어진다”)이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단 분석이 나왔는데요. 이후 주가는 수직낙하해, 2년 만에 -80%를 기록합니다(317달러→63달러). 당시 알리바바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총 증발’ 기록을 썼죠.

뉴욕증시에서 거래되는 알리바바 주가 추이. 2020년 10월 27일 최고점 317달러를 찍었지만 이후 주가는 추락했다. 구글 금융

뉴욕증시에서 거래되는 알리바바 주가 추이. 2020년 10월 27일 최고점 317달러를 찍었지만 이후 주가는 추락했다. 구글 금융
최근 2년간 알리바바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2019년 9월 마윈의 은퇴 이후 그룹을 이끌었던 장융 회장 겸 CEO가 2023년 6월 갑자기 회사를 떠났습니다. 장융은 재무 출신(타오바오 CFO로 2007년 입사)으로 2009년 중국 최대 쇼핑 축제로 통하는 ‘쌍십일절’(11월 11일, ‘광군제’라고도 칭함)을 만들어내 중국 마케팅 역사의 획을 그은 인물이죠. 2016년부터 알리바바가 내세운 온라인·오프라인을 융합한 ‘신유통(New Retail)’ 전략 중심엔 그가 있었는데요. 그의 사임과 함께 알리바바 전략은 완전히 바뀝니다. 새로운 CEO인 우용밍은 이제 “사용자 우선, AI 중심”을 외치죠.이런 전환이 호응을 얻으면서 주가는 지난 1년 동안 40% 뛰었고요. 무엇보다 수년 동안 은둔하다시피 했던 창업자 마윈이 지난 2월 간담회에서 시진핑 주석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그 직후 알리바바는 앞으로 3년 동안 72조원(3800억 위안)을 AI에 투자한다는 공격적인 투자계획도 밝혔죠. 동시에 과거 인수했던 오프라인 소매업체들은 줄줄이 매각 중입니다. 지난해 말~올해 초엔 중국 최대 마트인 ‘썬아트’, 백화점 체인 ‘인타임리테일’을 모두 인수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내다 팔았습니다.이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알리바바 내부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옵니다. 15년 일한 관리직 직원 ‘위안안’이 퇴사하면서 올린 글이었죠(참고로 위안안은 본명이 아니라, 사내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별명입니다). 1만자 가까이 되는 글은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요. 온라인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죠. 특히 ‘이건 우리 회사 얘기’라며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는데요.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요. 주요 부분만 발췌, 번역,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알리바바 퇴직자가 남긴 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사원증을 착용하는 게 불편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해, 지난 15년 동안 외부 평가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변했습니다. 사회에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오겠단 꿈을 잃었습니다. 우린 이제 KPI, 급여, 주식, 부동산에 대해 얘기합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약해지기 시작했을까요. 개인적으론 2017년부터라고 여깁니다. 10년 넘는 고속 성장 뒤 2017년부터 국내 인터넷·모바일 사용자 성장은 거의 멈췄습니다. 그룹의 각 사업 부문은 전략적 투자에 나섰지만 대부분 인수합병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내부 혁신 사업도 거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음식 배달: 2018년 인수한 어러머(Ele.me) 1위, 2년 만에 메이투안에 역전당함
-음악 스트리밍: 2013년 샤미와 티엔티엔동팅 인수로 1위, 2021년 폐쇄
-비디오 플랫폼: 2016년 투도우 인수로 점유율 1위, 현재는 3위
-전자상거래: 2016년 동남아시아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라자다 인수, 현재는 쇼피에 뒤짐

알리바바 사옥의 모습. 알리바바는 초창기부터 직원들의 본명이나 직급 대신 별명을 부르게 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윈의 별명은 ‘풍청양’. 진융의 무협소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화산파 고수 이름에서 따왔다. 알리바바 제공

알리바바 사옥의 모습. 알리바바는 초창기부터 직원들의 본명이나 직급 대신 별명을 부르게 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마윈의 별명은 ‘풍청양’. 진융의 무협소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화산파 고수 이름에서 따왔다. 알리바바 제공
회사 내 문제는 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외부 인력에 대한 맹신: 과거 알리바바가 위챗을 극찬하며 젊은 고위직을 대거 영입했을 때 그들은 무분별한 지시로 장기적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우리는 농담으로 ‘이 사람들은 상대편 스파이 아닐까’라고 말했죠. 그들은 대부분 스톡옵션 기간을 버티는 걸 목표로 한 채 단기적 업무에 집중했습니다.들개가 승리한다: 황소(높은 가치관을 가진 고성과자), 들개(가치는 무시하고 성과만 내는 직원), 토끼(회사 가치는 구현하지만 성과는 못 내는 직원). 과거엔 황소를 발굴하고 들개를 퇴치하고, 토끼를 개량하는 걸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적은 투자로, 더 빠르게, 더 큰 성과를 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문화는 들개를 승리하게 만듭니다. 신뢰가 감소하고 협력 비용이 커집니다.

불투명한 분배시스템: 성과 평가점수가 급여와 연결돼 있지만, 성과는 공개되지 않아서 관리자가 큰 재량권을 행사합니다. 이런 투명성 결여는 상사에 대한 충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전략의 불명확성: 최근 몇 년간 미래에 대한 전략이 명확하지 않았고 점차 사용자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위에서 아래로의 전달은 너무 추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려고 함: 과거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대세’가 이런 많은 ‘해야 할 일’을 지탱하는 기반이었습니다. 대세가 사라지자 이런 ‘해야 할 일’ 뒤에 숨은 비합리성이 비합리적인 업무 방식을 키웠습니다. 성장이 둔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직원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우린 여전히 적은 투자, 짧은 주기, 높은 목표를 추구합니다.

마케팅: 단기간에 적은 투자로 어떻게 성과를 낼까요. 정답은 마케팅입니다. 마케팅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면 지표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타겟 데이터 분석으로 ROI(광고지출 대비 수익률) 최적화. 성장이 멈췄다면? 새로운 지표 정의. 온갖 수단이 동원됐고, 장기적 제품 구축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습니다. 마케팅이 가져다주는 허황한 번영은 제품의 공허함을 가리곤 합니다.

관료주의: 많은 고위직은 현장에 내려가지 않고 산업을 깊이 이해하지 않습니다. 관료주의는 판단의 전문성 결여, 현실과 동떨어진 성과 요구를 초래합니다. 실제론 A를 원하지만 B를 하는 척하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여러 단계 보고로 시간을 허비하고, 결정 단계에선 망설이고 흐지부지됩니다.

중국 최대 쇼핑축제인 ‘쌍십일절’을 알리는 알리바바 티몰 행사의 모습. 중국에선 ‘텐센트의 제품, 바이두의 기술, 알리바바의 마케팅’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알리바바는 마케팅에 강한 기업으로 통한다. 하지만 마케팅을 통한 단기성과 극대화 전략은 한계에 부닥쳤다. 알리바바 제공

중국 최대 쇼핑축제인 ‘쌍십일절’을 알리는 알리바바 티몰 행사의 모습. 중국에선 ‘텐센트의 제품, 바이두의 기술, 알리바바의 마케팅’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알리바바는 마케팅에 강한 기업으로 통한다. 하지만 마케팅을 통한 단기성과 극대화 전략은 한계에 부닥쳤다. 알리바바 제공
우리는 여전히 큰 회사이지만 평범해졌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가치관을 포기했단 점입니다. 제가 좋아했던 옛날의 여섯 가지 가치관은 고객 우선, 팀워크, 변화수용, 신뢰, 열정, 헌신입니다. 이는 모두 변질됐습니다.

고객 우선주의는 상사 우선주의에 밀립니다. 상사가 성과, 보너스, 스톡옵션, 승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익 메커니즘이 왜곡된 상황에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상사에 대한 충성심으로 변질됩니다.

팀워크는 승자독식 체제로 변모합니다. 사업이 번영할 땐 팀워크가 상호이익을 가져왔지만, 외부 성장 공간이 제한되자 경쟁 방향이 외부에서 내부로 전환됐습니다. ‘들개’가 가장 이익을 얻게 됩니다.

변화 수용은 불명확한 전략을 은폐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잦은 인사, 변화하는 정책, 단기적이고 연속성 없는 KPI. 고위 관리자들은 자신의 전략 실패로 인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 계속 같은 문제를 반복합니다. 한명의 무능한 장군이 모든 군대를 지치게 합니다.

신뢰는 희귀해졌습니다. 결과만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약탈, 도둑질, 실적 조작, 허위보고가 일상화됩니다.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우위를 점합니다. 사전에 허세를 부려 자원을 차지하고, 중간에 데이터를 조작하며, 사후에 책임을 전가하는 세 가지 기술을 숙달한 사람들이 활개 칩니다.

열정은 좋은 인센티브 제도 하에서 발휘됩니다. 996(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은 실질적인 가치가 없습니다. 우린 육체노동자가 아닙니다. 창의성은 압박이 아닌 동기부여로 발휘됩니다. 큰 보상 아래에는 분명 용감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일이 가치 있다면 자연스럽게 초과근무를 할 것입니다.

성실함이란 농사 짓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유목 문명이 지배적이어서 가치 있는 업무엔 많은 사람이 몰리고, 가치가 사라지면 버려집니다.

이 글이 많은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지만,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회사가 문제를 직시하고 점차 나아지길 바랍니다. AI가 왔습니다. 이 시대를 받아들이세요. 회사가 푸른 하늘, 튼튼한 땅, 맑은 공기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스타트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참고로 이 글을 쓴 위안안은 퇴사 뒤 뉴질랜드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갔습니다. 그는 2~3년 전부터 이민을 생각했다는군요. 이 글이 화제가 된 뒤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어떤 기업이 새로운 성장을 포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알리바바는 과거에 너무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대기업병이 기업을 성장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럼, 이 글에 대한 회사 측 반응은 어땠을까요. 이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마윈 창업자가 내부 게시판에 “긴 글 감사하다. 정말 잘 썼다”라는 답글을 남겼단 점인데요. 마윈은 이어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람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알리바바의 발전에도 필연적인 여러 경로와 과정이 있습니다. 알리바바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며, 종종 다시 찾아와주세요.”

알리바바 차이충신 회장과 우용밍 CEO. 이들의 지휘 아래 알리바바는 AI와 클라우드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알리바바 제공

알리바바 차이충신 회장과 우용밍 CEO. 이들의 지휘 아래 알리바바는 AI와 클라우드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알리바바 제공
그리고 지난달 말 알리바바의 차이충신 회장과 우용밍 CEO가 공동명의로 발송한 주주서한 말미엔 이런 내용이 담깁니다. “글로벌 AI 기술 혁명이 가져올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알리바바는 제로부터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스타트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기회를 포착하고 창조할 수 있습니다. 알리바바의 DNA에는 현상유지란 없으며 오직 창조만이 있습니다. 오늘의 알리바바는 창업자의 자세로 AI 시대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스타트업 사고방식, 창조의 DNA, 창업자의 자세. 의례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은 이를 위안안 글에 대한 답변처럼 여겼습니다. 적어도 AI 시대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내부 병폐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는 보인 거죠.

물론 최고위층이 선언한다고 해서 직원 수 12.4만명의 거대한 기업이 한 번에 바뀔 리는 없습니다. (참고로 2024년 말 직원 수 19.4만명이었지만 유통 자회사 매각으로 7만명 감소) 기업문화를 바꾼다는 건 상당히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죠. 알리바바가 더 많은 인재가 떠나기 전에 진짜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이제부터 지켜봐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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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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