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이 담긴 세법개정안,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OBBB)'이 워싱턴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의 이슈 블랙홀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우군일 것 같았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도 이 법안을 두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갈라섰는데요.
요즘 세계 금융시장에선 그중에서도 제899조가 뜨거운 감자입니다. 이 조항은 미국 기업에 대해 '불공정한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의 개인, 법인, 국부펀드 등에 대해 미국에서 올리던 이자·배당·사업 등의 소득에 추가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복세'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입니다.
도이체방크, 알리안츠, UBS 등 미국 외 투자은행(IB)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을 자본전쟁으로 확전시킬 수 있는 조치"라면서 "안 그래도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해외 자금이 미국 시장에서 빠져나갈 명분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채 수요가 더 위축되어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 가치는 하락하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월스트리트도 다르지 않습니다. JP모건은 "미국 자산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OBBB는 지난달 22일 미국 하원을 통과해 상원의 검토를 거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내용이 방대한데 워낙 논란거리도 많다 보니 상원도 곳곳에 칼을 대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7월 4일 시한까지 최종안이 나오긴 난망해 보입니다. 지금의 제899조가 최종안에도 그대로 유지되어 시행까지 갈 가능성도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의 경계심은 꽤 높습니다. 미국 배당주, 채권 등에 노출이 많은 국내 투자자들도 세금폭탄을 맞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습니다. 이 조항의 구체적인 내용과 국내 투자자들에게 미칠 영향, 실현 가능성과 함의를 짚어봤습니다.
한국도 보복세 대상 가능
제899조는 미국 기업에 "불공정(unfair)"한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의 개인, 법인, 정부기관, 국부펀드 등에 대해 보복성 원천징수 세금을 부과할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항입니다. 미국 재무부 장관은 불공정한 세금을 운영하는 국가를 "차별적 해외 국가(discriminatory foreign country)"로 규정하고 원천징수세율 인상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불공정 세금이란 OECD가 주도해 도입된 글로벌 최저한세 규정 중 소득산입보완규칙(UTPR), 디지털세(DST), 우회이익세(DPT), 그리고 재무부 장관이 차별적이라고 판단한 기타 모든 역외 세금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UTPR과 DST, DPT는 모두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법들입니다. 주요 타깃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죠.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많이 도입한 디지털세는 메타, 구글, 아마존 등 미국 플랫폼 기업들에 대해 매출 기준으로 과세하는 근거법이 됐습니다. 영국이 처음 도입한 우회이익세도 '구글세'라고 불릴 정도로 구글의 세금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우리나라도 2022년 OECD 국가들 중 가장 먼저 글로벌 최저한세 규정을 국내법에 반영한 뒤 올해부터 UTPR을 시행키로 했습니다. 제 899조가 이대로 도입된다면 한국도 자동적으로 차별적 국가로 지정될 수 있습니다.
배당소득 최대 35% 인상 가능성 O
미국채 이자소득 과세 가능성 X
중요한 건 과세 대상인데요. 이자, 배당, 임대료, 급여, 연금, 로열티 등 미국 원천소득(FDAP)과 자본이득, 미국 내 사업연결소득, 외국 법인의 미국 내 지점 소득세에 보복성 세율 인상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기존 세율보다 연간 5%포인트씩, 최대 20%포인트까지 인상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이대로라면 한국 투자자들은 미국 배당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이 35%까지 오를 수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는 미국과의 조세조약에 따라 기본 세율(30%)의 절반인 15%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논란은 미국 국채, 회사채 등 채권 이자소득도 보복세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입니다. 지금은 미국 국채와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회사채 등 미국채에 대한 외국인 이자소득은 면세가 되고 있습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골드만삭스, 맥더못윌에머리 등 미국 법조계와 월스트리트는 제899조에서도 미국 채권에 대한 이자소득은 예외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이자 면세' 조항 덕분입니다. 이 조항에 따라 외국인이 미국 국채, 모기지담보증권(MBS), 회사채 등 미국 채권에 투자해서 받는 이자소득은 원천징수세가 면제됩니다. 외국인의 미국 자본시장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1984년 도입됐습니다. 현재 법안에선 모호하지만, 이 규정이 제899조에도 적용될 것이란 게 미국 내 중론입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상원 의원들이 이 조항을 조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특히 "국채 투자 등의 포트폴리오 이자는 추가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더욱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바꿀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미국도 국채까지 함부로 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외국 정부와 중앙은행, 국부펀드 등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채 수요에도 상당한 타격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이체방크는 그럴 경우 미국 국채의 실질 수익률이 100bp(1bp=0.01%포인트) 하락하는 효과를 낳아 미국채 수요 위축, 조달 비용 증가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미국 국채 이자소득에 대해 보복세가 매겨질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미국 일반 상장주식에 대한 매매차익도 징벌적 과세 대상이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외국인이 주식 거래로 얻은 소득은 애초에 미국 세법상 원천과세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 제899조엔 다국적 기업에 대한 미국판 최저한세, BEAT(Base Erosion and Anti-Abuse Tax) 세율을 현행 10%에서 12.5%로 인상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미국에 자회사를 둔 한국 기업들은 추가 세금 부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면 실행 가능성은 의문이지만
앞서 강조했듯이, 이 조항이 상원까지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수정 없이 통과가 되더라도 이대로 전면 시행될 가능성도 미지수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실제 시행될 지 여부는 불투명하며, 협상용 카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습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불리한 세제 조항을 철회시키기 위한 협상 카드에 그칠 수 있다는 겁니다. 맥더못윌앤에머리 로펌은 "외교적 협상을 통해 철회돼 아예 시행이 되지 않거나 실질적인 영향이 약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역시 불확실성입니다. 정말 도입이 된다면 미국 재무부 장관의 재량에 맡겨지는 '차별적 해외 국가' 지정 절차부터 과세 발동 요건, 대상 등 모호한 점이 많습니다.
과세 대상도 확대될 위험이 있습니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포트폴리오 이자 면세 규정이 백악관 의지에 따라 무력화되거나, 제899조를 양자 간 조세조약의 예외로 규정하는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되면 한국에 대한 배당소득 원천징세율이 상호 조약에 따른 15%가 아닌, 기본 30%를 베이스로 징벌적 과세율이 35~50%까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이 이 이슈에 주목하고 있는 건 제899조의 존재 자체가 미국에 대한 글로벌 신뢰를 훼손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외국자본에 대한 과세를 새로운 레버리지 수단으로 활용해, 무역 전쟁을 자본 전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미국이 자본시장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공표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