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첫 방미를 계기로 한·미 원자력 협력이 본격화됐다.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제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원전 부문에서만 4건의 양해각서(MOU)를 맺으면서다. 이른바 ‘마아가(MAAGA·미국 원자력을 다시 위대하게)’ 협력을 계기로 국내 원전업계가 소형모듈원전(SMR) 국제 상용화, 미국 내 전력 인프라 구축, 핵연료 공급망 안정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李 대통령도 “한·미 원전 협력”
26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러드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계기로 조선, 원전, 항공, 액화천연가스(LNG), 핵심 광물 등 5개 분야에서 11건의 계약 및 MOU가 체결됐다. 이 가운데 4건이 원자력 분야에서 성사됐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곧바로 행사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차세대 원전 분야 협력을 늘리는 일과 SMR 개발 및 상용화로 인공지능(AI) 시대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충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행사 직후 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는 엑스에너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4자 MOU를 체결했다. 세계 주요국은 2030년께 표준설계인가 획득을 목표로 차세대(3세대 이상) SMR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엑스에너지는 Xe100이라는 고온가스 기반 4세대 SMR을 개발 중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텍사스주 다우케미컬 부지 건설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한수원은 Xe100 설계 수정 단계부터 관여할 전망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이나 연구기관의 처음 설계대로 원전이 지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며 “시공사나 운영사가 시공성과 운영성, 정비성 같은 걸 따지다 보면 설계가 조금씩 바뀌는데 한수원 등 팀코리아가 그런 (설계도 정비)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은 설계부터 기자재, 운영 노하우, 공급망 구축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글로벌 SMR 시장에서 ‘패키지 공급자’로 자리 잡을 전망”이라고 했다.
◇美 대형 원전도 수주 물꼬
미국 에너지기업 페르미아메리카가 텍사스주에 추진 중인 세계 최대 규모(11GW) 첨단 에너지 복합센터 ‘AI캠퍼스 프로젝트’에도 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 삼성물산 등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한다. 이 센터에는 대형 원전 4기(4GW)를 비롯해 SMR(2GW), 가스복합화력(4GW), 태양광(1GW) 등 전력 인프라와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대형 원전과 관련해서는 페르미아메리카가 웨스팅하우스로부터 AP1000 실시권을 사고 한수원 등 팀코리아에 건설, 기자재 납품 등을 발주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최신 대형 원전 노형인) AP1000은 세계적으로 6기 발주됐는데, 두산에너빌리티가 기자재 납품 전량을 수주했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또 미국 농축 우라늄 공급사 센트러스의 우라늄 농축 설비 구축에 공동 투자하고 공급 물량을 확대하는 내용의 MOU도 맺었다. 이번 협력으로 미국 내 생산 기반을 일부 공유하게 돼 장기적·안정적 연료 확보가 가능할 전망이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한·미 에너지산업 협력의 모범 사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을 극복하고 미국 시장에 함께 진출하기 위한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조인트벤처 설립 방안은 이번 방미에서는 확정되지 않았다.
김리안/김대훈/안시욱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