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이곳을 찾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동서 화합을 꿈꿨습니다. 지금 저는 부산이 세대 간 화합으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발전하는 꿈을 꿉니다. 저의 꿈, 도전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11일 부산 명지시장을 찾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이같이 말하자 주차장에 운집한 100여명의 청중이 '이준석'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 선거 공식 후보 등록을 마친 그는 전날 대구에 이어 이날 부산을 찾아 영남권 민심 잡기에 나섰다. 이 후보는 "저와 개혁신당에 대한 영남 지역의 밑바닥 민심에 고무됐다"며 "최근 부산 시민들의 개혁신당 당원 가입 추이가 급증하는 현상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명지시장은 2000년 총선 당시 서울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이 청중 없는 공터에서 연설한 곳이다. 동서 화합을 이루겠다는 다짐으로 당시 진보 진영의 험지로 꼽혔던 부산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은 그때 자리에 모인 군중을 보고 '참으로 사람이 별로 안 왔네요'란 말로 운을 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오늘 보니 '정말 많이 와주셨네요'라고 인사를 드려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증권거래세 감면, 야구장 신설... 맞춤형 공약
이 후보는 "부산의 젊은이들이 똘똘 뭉쳐서 구체적인 얘기를 할 때"라며 지역 맞춤형 공약을 내놨다. 그는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부산의 미래에 대한 각종 구상을 내놨지만 희망 고문으로 끝났다"며 "엑스포, 신공항, 금융단지 등 구호만 난립한 채 구체적인 논의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홍콩과 싱가포르, 상하이 등 아시아 금융 허브 도시들의 사례를 든 그는 "저의 눈에 비친 부산의 미래에는 금융이 보인다"고 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부산에 본점을 둔 증권사에 대해 증권거래세와 농어촌특별세를 감면하고, 현재 1본으로 설계된 가덕도 신공항의 활주로도 2본으로 증설해 교통망을 확충할 것을 약속했다.
부산을 항구 도시를 넘어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조성하겠다는 비전도 밝혔다. 그는 "재개발 공사 중인 부산 북항에 야구장을 신설하겠다"며 "한쪽 면을 바다와 접하게 설계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구장과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 지역 랜드마크로 조성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이어 이 후보는 "부산의 미래는 교육에 있다"며 부산대와 부경대, 동아대 등 부산 소재 대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한 아이들이 부산을 떠나지 않고도 생업을 이어갈 수 있게끔 하겠다"며 "그것이야말로 부산이 청년층 이탈로 '노인과 바다' 등 자조적인 소리가 나오지 않는 도시로 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신 이어가겠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며 부산 시민과의 만남을 갈무리했다. 그는 "동서 화합을 얘기하셨던 노 전 대통령은 어느 정도 물꼬를 트시고 떠났다"며 "보수 정당에 남아 부산에서 '성골' 정치를 할 수 있는 길을 두고도 굳이 험지를 선택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신께서 겪었을 외로움을 저도 잘 안다. 지금껏 다수에 휩쓸리기보단 옳은 방향을 지향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부산시의회로 자리를 옮긴 이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저 이준석 중 누가 노무현 정치와 닮아있는지 부산 시민들께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재명 후보는 지난 대선에 낙선한 이후 승리 가능성이 높은 인천 계양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본인이 시장을 지냈던 경기 성남을 버린 셈"이라며 "도망과 회피의 정치는 노무현 정치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저는 서울에서도 보수 험지인 상계동에 계속 도전했고, 지난해 총선에선 민주당이 우세했던 경기 동탄에서 당선됐다"며 "그것이야말로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노무현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0%'라고 일축했다. 이 후보는 "김 후보는 지난 10년간 상당히 오른쪽으로 경도된 행보를 보여오셨다"며 "과거에 대한 확실한 단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들은 단지 '윤석열 정부의 연장선'으로 느끼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지난해 총선 당시 경기 화성을 지역구에서 그한테 승리를 안겨준 '동탄 모델'로 승리할 계획을 재차 밝혔다. 아 후보는 "정치인 때문에 국민의힘을 뽑기는 싫고, 또 민주당을 뽑자니 급진적인 정책이 부담스럽다는 합리적인 유권자분들이 많다"며 "정권 교체를 넘어 세대교체, 시대 교체를 위해선 이준석이 유일한 선택지일 것"이라고 했다.
부산 명지시장 방문을 마친 이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하는 12일 자정에 맞춰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유세를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2002년 대선 국면에서 영남권에서 출발해 호남권으로 무대를 옮긴 노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 전략을 오마주한다는 취지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도 한 자릿수 지지율로 시작해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썼다"며 "부산과 여수를 시작으로 다음 주 중 대구, 대전, 세종, 전주를 차례로 찾아 지역 민심을 청취할 계획"이라고 했다.
부산=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