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해외 이공계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미국과의 관세전쟁과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최고급 두뇌 유치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미시간대에서 활동하던 30대 재료 과학자 리용시 박사가 최근 중국 난징대 수저우캠퍼스 부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워싱턴대와의 협업을 통해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학위와 연구 경력을 쌓은 그는 유기전자, 투명 태양전지, 웨어러블 의료기기 등 첨단 분야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연구자다. 리 박사는 수저우의 산업 생태계가 연구 성과를 상용화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해 중국행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최근 하버드대 나노과학을 개척한 찰스 리버 전 하버드대 교수(66)를 중국 칭화대 선전국제대학원 석좌교수로 영입했다. 칭화대는 “리버 교수의 합류는 선전의 소재·의공학 분야 연구 역량을 한층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리버 교수는 2021년 중국의 해외 과학기술 석학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계획’ 관련 소득을 미국 정부에 신고하지 않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2023년 하버드대에서 은퇴했다. 당시 그는 중국 우한이공대와 계약을 맺고 월 5만달러와 연간 15만달러의 생활비, 연구소 설립비 150만달러 등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앞서 2022년 세계적 구조생물학자인 옌닝 프린스턴대 교수를 영입했다. 옌닝은 선전의료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서 활동하던 이소량 박사도 지난해 중국에 돌아가 화학에너지 연구에 합류했다. 캐나다 출신의 인공지능(AI) 연구자 알렉스 램은 한때 중국 연구비 수령을 꺼렸지만 지난해 칭화대에 영입됐다.
한국 과학계도 두뇌 유출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다. 차세대 반도체·배터리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 탄소나노튜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영희 성균관대 석좌교수가 최근 중국 후베이공업대에 임용된 게 대표적이다. 이론물리학자인 이기면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도 지난해 정년퇴임 후 중국 베이징 수리과학응용연구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은 이공계 석학 등을 대상으로 고액 연봉과 주택, 의료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비, 생활비 등도 부족함 없이 지원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천인계획에 참여한 외국인 학자는 인당 100만위안(약 2억원)의 정착 보조금과 최대 500만위안(약 9억7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이밖에 50평대 고급 아파트, 배우자 취업 알선 등의 혜택도 받는다.
이런 조건은 정년 퇴임 후 연구 과제 수주나 연구실 운영이 어려운 석학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대형 실험실은 물론, 연구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8년부터 천인계획으로 해외 고급 인재를 유치해 기술굴기를 추진했고, 2012년부터는 ‘만인계획’으로 국내 인재 육성에도 힘쓰며 기술굴기를 본격화해 왔다.
미국에서는 기술패권 유지를 위한 인재 전략이 부족하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수출 통제나 인프라 투자만으로는 기술 우위를 지킬 수 없으며, 장기적인 인재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