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 전문가 10명 중 9명은 하반기 서울 아파트 가격이 뛸 것으로 내다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급 확대를 통한 시장 안정을 공약한 것과는 상반된 전망이다. 새 정부가 ‘공급 부족’ 우려를 불식하고,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심리를 완화하려면 부동산 규제 완화와 주택 공급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경제신문이 건설사, 시행사, 학계, 금융권 등 부동산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5일 긴급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43명(86%)은 새 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5% 이상 급등을 예측한 비율도 20%에 달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경색과 공사비 갈등 등으로 서울 지역 신규 공급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가 가장 방점을 찍어야 할 부동산 정책 목표는 ‘지방 미분양 해결’(34%)과 ‘주택 공급 확대’(30%)가 1, 2위를 차지했다.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동산 공약으로는 ‘재건축·재개발 때 용적률 상향’(64%)을 꼽았다.
과감한 규제 완화 카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쏟아졌다. ‘공급 절벽’ 해소를 위해 새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정책(복수응답)은 ‘양도세와 취득세 등 세제 감면’(68%)과 ‘대출 규제 완화’(62%)라는 응답이 많았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여력이 있는 유주택자가 주택 수요를 일으켜야 지속적인 공급이 가능하다”며 “1가구 1주택 정책 폐지나 과감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42% "내년까지 집값 상승세"…"4기 신도시 추진은 개선 필요"
이재명 정부가 해결해야 할 부동산 과제는 수두룩하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공급 불안으로 집값이 치솟고, 지방에선 준공 후 미분양(악성 미분양)이 쌓이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신규 주택 공급 부족과 기준금리 인하 기대 등으로 올해 하반기에도 아파트 매매가와 전셋값이 동반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민간 공급 확대, 다주택자 세제 완화 등 시장 안정을 위한 실행력 있는 부동산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서울은 상승 이어질 듯
5일 한국경제신문이 부동산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전국 아파트값이 강보합세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62%는 상승을 예상했으며, 36%는 보합(-1~1%)을 전망했다. 나머지 2%만 하락을 점쳤다. ‘상승론’에 베팅한 전문가의 41.9%는 내년 하반기, 35.5%는 2027년 이후까지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상승을 내다본 이유는 신규 공급 부족, 추가 금리 인하 기대, 전셋값 상승 때문이다.
지역별로 나눠 보면 서울과 지방의 전망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서울은 전문가 86%가 매매가격 상승을 예측했다. 가장 큰 이유는 공급 부족 우려다. 여기에 ‘똘똘한 한 채’ 강화 기조가 맞물렸다. 다주택자 규제와 상가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 강남권 아파트를 제외하곤 자금이 흐를 만한 투자처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서울은 자산가 중심 매수세가 형성된 곳이 많아 다음달 시행되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아파트 가격 전망은 보합(48%)이란 답변이 절반에 가까웠다. 상승과 하락 응답자는 26%로 동률을 이뤘다. 비수도권은 수요 대비 공급 과잉 속에 ‘불 꺼진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2만6422가구)의 82.9%(2만1897가구)가 지방에 집중돼 있다. 인구 감소, 지역 경기 위축 등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 “지방 미분양 해결” 서둘러야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공약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건 도심 주택 공급과 관련이 깊은 ‘서울 재건축·재개발 때 용적률 상향’(64%)이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 공약이 세금 폭탄식 규제보다 시장 흐름을 인정하는 실용적 노선인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개선해야 할 공약으로는 ‘4기 스마트 신도시 건설’(46%)을 꼽은 전문가가 절반에 가까웠다. 4기 신도시 건설은 기존 2~3기 신도시의 교통·일자리·자족성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성과 추진력 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고품질 공공임대주택 및 공공임대 비율 확대’(30%)에 대한 우려도 컸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공공임대 확대는 결국 중산층 이상의 세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했다.
새 정부가 가장 방점을 찍어야 할 부동산 정책으로는 ‘지방 미분양 해결’(34%)과 ‘주택공급 확대’(30%)라는 답이 많았다. 이어 ‘집값 안정’(12%), ‘국토 균형발전’(10%) 등의 순이었다. 주택 공급 절벽 해소를 위해 시급히 펼쳐야 할 정책으로는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 세제 감면’(68%),‘대출 규제 완화’(62%), ‘비아파트 규제 추가 완화’(34%) 등을 꼽았다.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복수응답)으로는 ‘세제 감면 등을 통한 수요 회복’(72%), ‘공급 확대를 통한 시장의 공급 부족 우려 불식’(64%) 등의 답변이 많았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조기 정리, 금리 인하 등을 통한 민간 개발사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인혁/심은지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