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미국과 이란 간 충돌 이후 금 가격은 한때 14% 가까이 밀렸다. 최근에는 온스당 4300달러 아래로 내려오며 올해 상승분도 대부분 반납했다. 전쟁과 물가 상승이라는 전형적인 상승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는데도 반대로 움직인 셈이다. 이번 낙폭은 1983년 이후 최대 주간 하락폭으로 평가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거시 변수다.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물가 압력이 커졌고, 그만큼 금리 인하 기대는 뒤로 밀렸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는 자산이다. 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보이면 매력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달러 강세도 영향을 줬다. 다만 금값은 파운드, 유로, 엔화 기준으로도 함께 내려 환율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금보다 달러…시장의 선택이 바뀌었다
핵심은 자금의 흐름이다. 지난 1년 동안 금에는 자금이 몰렸다. 중앙은행 매입과 투자 수요가 겹치면서 가격이 빠르게 올라온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터지자 투자자들의 선택은 달랐다. 안전자산을 더 사들이기보다, 먼저 현금을 확보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변동성이 커지자 증거금과 손실 보전을 위해 자금이 필요해졌고, 그 과정에서 가장 쉽게 팔 수 있는 자산인 금이 매도 대상이 됐다.결국 금은 ‘안전자산’이어서가 아니라 ‘유동성이 높은 자산’이었기 때문에 먼저 팔렸다. 블룸버그 역시 최근 하락을 두고 강제 매도와 현금 확보 수요가 겹친 결과로 보고 있다.여기에 정치 변수도 더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요구하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낸 이후, 시장의 긴장감은 한층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금보다 달러를 쥐는 쪽을 택하고 있다.
● 금리와 중앙은행…남은 변수들
금값에는 금리 변수도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유가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고, 이는 금리 상승 기대로 이어지며 금 가격을 누르는 구조다.
중앙은행 수요도 변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금 비중을 늘리며 가격 상승을 이끌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외환보유액을 쌓기보다 실제 결제에 써야 할 필요가 커졌다. 금을 더 사기 어려운 환경이다.
산유국 역시 수출 차질로 재정 부담이 커질 경우 금을 매도할 가능성이 있다. 인도와 중국 개인 투자자들도 에너지 가격 상승 부담을 느끼면 보유 금을 현금화할 수 있다.기술적으로는 이미 과매도 구간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이번 하락이 장기 추세의 변화라기보다, 그동안 몰렸던 자금이 빠져나가는 과정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과거 금융위기나 팬데믹 초기에도 금은 먼저 떨어졌다가 이후 상승 흐름을 보인 바 있다.
결국 이번 금값 하락은 단순한 가격 조정으로 보기 어렵다. 시장은 더 이상 ‘안전자산’이라는 이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금이 어디로 몰리고, 어디서 빠져나가느냐가 가격을 좌우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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