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민생 물가 관리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에너지업계가 논의해온 전기·가스요금 인상 논의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업계는 올여름 에너지요금 인상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고 앞으로의 요금 현실화 시점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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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력량계 모습.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
11일 관계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에너지 당국과 공기업은 전기·가스 등 에너지요금에 대한 정기 조정 논의를 시작했다.
전기요금은 전기 판매를 도맡은 공기업 한국전력(015760)공사가 매 3·6·9·12월 조정안을 만들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하면 산업부가 전기위원회 심의와 함께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 후 이를 인가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한국가스공사(036460) 역시 통상 매 짝수달 말 비슷한 형태의 논의를 거쳐 도시가스 요금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
이달 논의에선 에너지 요금 조정이 어려우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재명 정부가 이제 막 출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요금은 공공성이 큰 만큼 역대 모든 정부가 정권 초 요금 현실화 논의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더욱이 이 대통령이 지난 9일 2차 비상경제점검 대책반(TF) 회의에선 “라면 한 개에 2000원도 한다는데 진짜냐”라며 민생물가 대책을 주문한 만큼 이번 에너지 요금 인상 논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도 대선 기간 에너지 요금 인상 불가피론을 언급한 바 있지만, 당장은 손대기 어렵다는 전제를 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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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2차 태스크포스(TF)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문제는 한전과 가스공사가 2022년 전후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충격을 떠안으며 얻은 막대한 채무 탓에 재무위기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한전은 그동안 쌓인 약 31조원의 누적 적자와 이자비용 탓에 부채는 205조원까지 불어난 상황이다. 가스공사도 받지 못한 민수용 미수금이 14조원까지 불어나면서 44조원의 부채를 끌어안고 있다. 이들 기관이 매년 부담해야 할 이자비용만 연 5조원 이상이다. 에너지요금 현실화 없인 새 정부의 공약인 공공기관의 재무관리 강화를 통한 재무건전성 확보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인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중심의 ‘에너지 고속도로’ 이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한전은 2038년까지 현재 계획된 전력망 구축에만 72조 8000억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의 공약인 동·서·남해를 ‘U’자 형태로 잇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현실화하려면 이보다 더 큰 비용 투입이 불가피하다. 발전 단가가 낮은 석탄·가스화력발전 전력을 2~3배 비싼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으로 대체하는 것도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물가를 잡으려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물가 통제를 이유로 정부가 공공요금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경기 진작을 이유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추진하는 동시에 물가 안정을 추진하는 건 모순”이라며 “한전은 (한전법에 따라) 채권 한도 발행이 제한돼 있고 2027년이면 한시적으로 늘려놓은 한도도 다시 줄어드는 만큼 그 이전까지 한전 누적적자를 어떻게 해소할 지 구체적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