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지니어스 법 제정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시장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아시아 주요국들도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와 발행에 잰 걸음이다. 특히 싱가포르, 홍콩, 일본이 발 빠른 모습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법제화는 2023년 8월(스테이블코인 가이드라인)로 일본의 2023년 6월(개정 자금 결제법)보다 다소 늦었지만, 발행은 아시아에서 가장 빨랐다. 대표적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싱가포르의 결제·송금업체인 스테레이츠엑스(동남아 기반 핀테크그룹인 FAZZ의 자회사). 2020년 10월 아시아 최초인 싱가포르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XSGD)에 이어, 2021년 11월 인도네시아 루피아 연동(XIDR), 2024년 2월엔 미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XUSD)을 발행했다.
우선 XSGD와 XIDR는 스테이블코인 가이드라인이 제정되기 전 규제샌드박스 내의 실험적 발행이어서, 누적 발행 물량(소각 제외)이 각기 8,360만 싱가포르 달러(853억 원), 113,9억 루피아(100억 원)으로 비교적 소규모다. 하지만, 시장에선 유의미한 성과라는 의견이다. XSGD는 싱가포르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블록체인상의 결제·송금과 국경 간 송금, XIDR는 인도네시아 근로자의 해외송금과 인도네시아 본토의 블록체인 기반 결제 촉진을 겨냥한 파일럿 테스트에서 좋은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했다는 평가다. 특히 XSGD는 동남아 최대 슈퍼앱인 그랩(Grab), 글로벌 결제망이라 할 수 있는 알리페이플러스(Alipay+)와 제휴·협력해서, 기존의 복잡한 환전과 정산과정 없는 실시간 결제로 인기를 얻고 있다.
미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XUSD는 XSGD나 XIDR 대비 발행이 훨씬 많았다. 1년 반 만에 XSGD의 9.4배, XIDR의 80배인 6천만 달러(7,990억 원)까지 늘어났다. 시장에선 스테이블코인 가이드라인 제정 이후 '테스트 베드'라는 제약이 없어진 데다, 대상도 아시아와 글로벌 투자자를 아우르고 있어서, 발행이 그만큼 많았다고 보고 있다. 싱가포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글로벌화와 신뢰도 제고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다만, '미 달러의 싱가포르 시장 잠식'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는 만큼, 일정 발행·유통 규모(SGD 5 million) 이상일 경우, Major Payment Institution (MPI) 면허 취득이라든지, 국내 결제에선 싱가포르 달러 연동인 XSGD도 반드시 사용하게 하는 규제 설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와 아시아 금융허브 경쟁을 벌이고 있는 홍콩도 서두르긴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스테이블코인 법(Stable Ordinance)을 제정한 후, 3개월 만인 8월 1일부터 바로 법을 발효시켰다. 시장에선 작년 3월부터 진행된 규제샌드박스 테스트와 그 과정에서 축적한 규제 세부 설계 경험(예 : 준비자산 형태, 상환, AML/CFT 체계 등)이 있었기에, 신속한 진행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규제샌드박스 참여기업은 징둥 코인링크 테크놀로지, RD InnoTec, 스탠다드차터드은행 등이다.
법의 정식 발효 이후론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신청하는 기업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현재 징둥, 스탠다드차터드은행 외에도 앤트 인터내셔널, 써클, HSBC 등을 포함, 80개 전후 기업이 의사 표명 또는 검토 중이라고 한다. 홍콩 금융당국(HKMA)은 8월 1일부터 발행 신청 접수를 시작했고 내년 초 첫 번째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시장에선 홍콩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위안화의 국제화 가속화와 달러 패권에 맞서는 신호탄이 될 거로 보고 있다.
일본 역시 디지털 금융에서는 후발주자로 평가받았지만, 스테이블코인만큼은 의외로 빠른 제도화를 보여줬다. 2023년 개정 자금 결제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암호자산과 분리해 전자 지급수단으로 규정하고, 발행사의 범위를 은행, 결제·송금, 신탁업 등으로 구체화했다. 지난 8월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승인받은 업체도 나왔다. 일본의 송금업체인 JPYC가 주인공. 10~11월 중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될 거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현재 JPYC에 이어 일본의 SBI와 디지털자산 플랫폼인 Progmat, 미국의 써클 등 10여 개 업체가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와 같은 역내의 아시아 주요국들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는 물론, 이미 발행했거나, 1~2개월 내로 발행할 예정이다. 발행 주체도 결제·송금업체, 빅테크, 디지털자산업체, 은행 등 은행·비은행을 아우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회와 금융당국, 관련 업계 모두 꼼꼼하게 준비하되, 통화주권과 글로벌 디지털금융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