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영광스러운 훈장을 직접 목에 걸고 나온 이유는 제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광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983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을 당시 현실은 정말 처절했죠. 세계인들이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위해서 꼭 최고의 자리에 나아가고 싶단 투철한 정신이 생겼거든요. 그 강한 마음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63)는 16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수미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의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받았다. 1957년 제정된 이 훈장은 예술·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창작 활동을 보였거나, 프랑스 문화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인 인물에게 주어진다. 훈장은 슈발리에, 오피시에, 코망되르 세 등급으로 나뉜다. 그중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받은 한국인은 2002년 김정옥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2011년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그가 세 번째다.
그는 “프랑스에서 최고의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는다는 건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영예”라며 “처음엔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에서 주신 것인 만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음악가로서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훈장 수여식엔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지난해 7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1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 참가자들이 그의 수훈을 축하하기 위해 깜짝 공연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국 음악가 이름을 내건 국제 콩쿠르가 개최된 건 조수미 콩쿠르가 처음이다. 이달 말 성남아트센터(2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22일) 등에서 이 콩쿠르 입상자들과 함께 공연을 여는 그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일곱 개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상금을 받은 뒤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더라고요. 힘들었죠. 이후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여러 국제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나 같으면 이렇게 도와줄 텐데’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세계에서 커리어를 쌓아봐서 알잖아요. 절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거든요. 앞으로도 음악가로서의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책임감을 지닌 후배들을 온 마음 다해 끌어주고 싶어요.”
조수미는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여주인공 질다 역으로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밀라노 라 스칼라 등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반열에 올랐다. 조수미는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극찬한 소프라노로도 유명하다. 1993년에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성악계 최고 영예인 ‘황금 기러기상’을 받았고, 2008년에는 비(非)이탈리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들어 올렸다. 2019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친선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은 데 이어 202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내년은 조수미가 세계무대 데뷔 40주년을 맞는 해다. 그는 “제게 너무나 뜻깊은 시기인 만큼 클래식, 뮤지컬, 케이팝, 한국의 창 등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컬 음악 축제를 열 계획”이라며 “국민의 오랜 사랑에 보답하고, 많은 이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반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