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최대 자동차 정비 업체인 ‘아브토리테트(Avtoritet)’는 한국 자동차 부품사들의 큰 손이다. 오일 필터부터 타이어까지 컨테이너로 매년 수 십 대씩 수입한다.
이 회사의 구매총괄사장이 어느 날 KOTRA 타슈켄트 무역관을 찾아 한국산 부품을 더 살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한국산은 품질은 좋은데 중국산보다 가격이 비싼 게 문제라며 조금이라도 수입가를 낮춰야 한다며 한국 자동차 부품 무역·유통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플랫폼에 우즈벡 부품수입업자들이 필요 품목과 수량을 입력한 뒤 한국의 전문상사나 물류회사가 이를 모아 컨테이너로 짜서 수출하면 물류비용을 낮출 수 있고, 다품종 소량 수입도 더 쉬워질 것이라는 훌륭한 제안이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간 물류비용은 상당하다. 대륙 한 가운데 위치해 바닷길을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어서다. 보통 중국이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로 보내고 이를 다시 철도로 운반한다. 환적도 많고 최소 2개국을 통과해야 해 비용도 시간도 많아진다. 40피트(ft) 대형 컨테이너가 아니면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진다. 20ft 2개를 한 열차에 올린다면 운반 중 안전을 위해 무게가 비슷한 짝을 찾아야 해서다. 수출량이 적은 중소기업이나 화장품처럼 부피가 작은 품목을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중앙아시아까지 물류비용, 그리고 예측하기 힘든 배송 시간은 큰 부담이다.
‘플랫폼 수출’은 우리 기업들의 이런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아직 사전적 정의는 없는 용어지만 수출대상국에 우리나라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국상품 수요를 집결시켜 회당 수출 규모를 확대하고 물류비용을 낮추는 수출 방법이라 풀어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와의 교역에서 플랫폼 수출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물류 여건도 어렵지만,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아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어려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수출에서 플랫폼은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이 가능하다. 자동차나 중장비 같은 수많은 부품이 결합되는 산업이라면 제조 클러스터가 플랫폼이 될 수 있다. 1996년 대우자동차와 그 협력사들의 우즈베키스탄 진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조성된 자동차 제조 클러스터로 한국의 대우즈벡 수출액은 급증했다. 1999년에는 러시아를 제치고 우즈벡 최대 수입대상국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자동차 부품이 우리나라의 대우즈벡 최대 수출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대우자동차의 제조 플랫폼 구축 덕이다.
편의점과 같은 유통체인도 훌륭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중앙아시아와 환경이 유사한 몽골을 보면, 그 성과가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된다. 2018년 몽골에 진출한 BGF리테일은 수도 울란바토르에 6개 점포를 열며 ‘CU’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400호점을 넘긴 매장은 K-푸드와 소비재의 몽골 수출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24년 한국의 대몽골 생활용품 수출액은 2020년보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몽골의 CU가 103개에서 400개로 점포를 늘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작년 1호점을 연 카자흐스탄 CU도 그래서 기대가 크다.
중앙아시아 5개국은 연 5~6%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3.0 내외의 출산율로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그러나 선진화되지 않은 시장 관행, 잦은 정책 변화로 우리 기업들이 각개격파식으로 개척하기는 쉽지 않다. 대우자동차나 CU 같은 민간 주도 플랫폼 수출 모델을 분야별로 발굴·육성하고, 공공성이 큰 분야는 민관협력 플랫폼 운영도 고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