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대에 그림을 그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눈앞의 장면을 기록하려면 사진을 찍으면 된다. 마음 속 영감을 자유롭게 보여주고 싶다면 영상을 비롯해 신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장르로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다. 벽에 걸 게 필요하다면, 인류 역사상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과 똑같은 이미지를 프린트해 걸어두면 그만이다. 미술계에서조차 꾸준히 “회화는 죽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회화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애정을 받으며 살아 있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작가 그룹전 ‘넥스트 페인팅: 애즈 위 아’는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작가 여섯 명이 각자의 답을 전시장에 내놨다.
김세은(36)은 도시 공간을 거대한 캔버스에 옮기는 추상화가다. 고등어(41)의 작품에서는 잔혹동화를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친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선 화풍이 두드러진다. 이은새(38)의 도발적인 색감과 조형의 작품도 눈길을 잡아끈다.
유신애(40)는 2023년 두산연강예술상 미술 부문을 수상한 유망 작가다. 대형 캔버스에 풀어낸 극도로 사실주의적인 표현, 기독교 미술의 삼면화를 연상시키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일상을 서정적으로 포착한 전병구(40)와 주변 삶을 스냅사진처럼 옮기는 정이지(41)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명화와 비슷한 안정적 구도와 서정성이 있다.
국제갤러리 한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아득한 오늘’도 매력적인 전시다. 현대미술가이자 영화감독, 전시 기획자 등으로 활동하는 박찬경 작가가 기획했다. 한옥 공간에 맞춰 전통과 현대미술을 조화시킨 작품들이 등장한다. 2023년 리움미술관 개인전을 연 김범(62)부터 임영주(43)·조현택(43)과 젊은 작가 최수련(39)·최윤(36)에 이르는 폭넓은 세대가 참여했다.
두 전시는 한국 대표 갤러리 중 하나인 국제갤러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 여름 젊은 작가 그룹전을 이어오던 국제갤러리는 한동안 이런 형식의 전시를 쉬었다. 그 사이 가장 최연소 소속 작가는 37세(이희준)가 됐다. 이번에 열린 두 기획전은 국제갤러리가 앞으로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젊은 작가를 적극 발굴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두 전시 모두 7월 2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