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유통업계 선도한
김인호 한국유통포럼 회장
오프라인의 핵심은 '체험'
놀거리 찾아오는 고객들
유인할 만한 콘텐츠 갖춰야
韓, 럭셔리·가성비 양극화
중고품 전문점 확대 전망
빅데이터엔 '평균의 함정'
소비자 취향 탐지는 사람몫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더현대 서울에 줄을 서고 스타필드 하남에서 하루를 보낸다. 백화점 식당가와 성수동 팝업스토어에도 발길이 이어진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더 싸고 빠르게 살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왜 굳이 오프라인 공간으로 향할까.
김인호 비지니스인사이트 부회장은 이 질문에 대해 "오프라인 유통의 본질이 거래에서 시간 점유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살아남는 오프라인 기업은 물건을 많이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꺼이 시간을 들여 머물고 싶게 만드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30년 넘게 유통업계에 몸담아 온 국내 유통 전문가다. 고려대와 일본 릿쿄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현대백화점에서 상품본부 MD기획팀장, 유통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이후 팜스퀘어와 가든파이브 등 복합쇼핑몰 최고경영자(CEO)를 지냈으며, 현재는 비지니스인사이트에서 국내 대기업의 상업시설 프로젝트 컨설팅을 맡고 있다.
최근 펴낸 '유통으로 그리는 돈의 지도'에서 그는 유통을 단순한 상품 판매업이 아니라 '돈의 길목을 설계하는 산업'으로 설명한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 플랫폼, 전문점 등은 모두 소비자가 어디에서 돈을 쓰고 어떤 기업이 그 흐름을 붙잡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라는 것이다.
◆ 오프라인 매장은 감성보다 체험
김 부회장은 "흔히 오프라인은 감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본질은 감성보다 체험"이라며 "실제로 가보고, 먹어보고, 머물러봐야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온라인과 다른 차별점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유통시설이 초대형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더현대 서울, 현대백화점 판교점, 신세계 센텀시티점 등은 단순히 매장 면적만 키운 사례가 아니다. 명품 소비와 외식, 놀이와 문화, 가족 체류 공간을 한곳에 묶어 소비자의 시간을 붙잡는 방식으로 진화한 공간이라는 설명이다. 김 부회장은 "요즘 초대형 쇼핑몰 고객은 과거 백화점 고객과 다르다"며 "상권 안에 사는 단골 고객만이 아니라 독특한 상품과 놀이를 찾아 훨씬 먼 지역에서 부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소비자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공간이 '물건을 사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바뀌는 사이 모든 유통업태가 같은 방향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대형 백화점과 복합 쇼핑몰은 체험 공간으로 진화하며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대형마트와 중소형 백화점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 소비패턴, 모래시계형으로 변화
김 부회장은 그 원인으로 소비 구조의 재편을 꼽았다. 그는 "한국 소비시장은 과거 피라미드형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마름모형으로 바뀌었고, 2010년 이후에는 모래시계형으로 변했다"고 진단했다. 소비자가 프리미엄 고가 상품과 가성비 상품으로 각각 쏠리면서 중간 가격대 소비가 약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돈은 어디로 흐를까. 김 부회장은 소비 구조 상단부에서는 대형 백화점과 럭셔리·체험 소비, 하단부에서는 다이소·올리브영 같은 전문점형 가성비 유통을 꼽았다. 소비가 양극화될수록 한쪽에서는 더 특별한 경험과 고급 상품을 찾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이 다음 돈의 흐름으로 주목한 분야는 리유스(Reuse·재사용) 시장이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가 확산되는 가운데 중고 시장이 새로운 유통 영역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일본의 세컨드스트리트처럼 중고·재사용 상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오프라인 리유스 유통이 한국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김 부회장은 "개인 간 거래(C2C)의 불편함을 줄이고 검수와 사입, 판매 시스템을 갖춘 리유스 유통은 한국에서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인공지능은 틈새시장 못 봐
한편 김 부회장은 유통업계의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활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재고 관리나 운영 효율 측면에서 AI의 중요성은 커졌지만 그것만으로 소비자의 변화를 모두 읽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빅데이터는 자칫 평균에 수렴하게 만든다"며 "소비시장이 모래시계형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평균 고객만 보면 정작 돈이 모이는 상단과 하단의 변화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회장은 "AI가 추천하고 분석하는 시대에도 소비자의 취향과 정서는 결국 사람이 읽어야 한다"며 "데이터를 해석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조합하는 능력이 미래 유통기업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순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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