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세계인공지능대회(WAIC)가 열린 중국 상하이 황푸강 변의 엑스포전람관. 입구에 들어서니 상하이 옛 거리가 나타났다. 옛 골목길로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을 줬지만 다양한 상점 주인과 직원은 모두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으로 대체됐다.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표주자인 애지봇이 개발한 반려 로봇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한쪽 카페에선 바리스타 로봇이 끊임없이 커피를 제조했다. 밀려드는 주문에도 2분마다 커피를 내놨다.
중국의 인공지능(AI) 부문 연례 최대 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WAIC는 중국이 목표하는 5년 뒤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올해로 7회째인 WAIC엔 화웨이, 바이두, 유니트리 등 중국 기업뿐 아니라 구글, 아마존, 지멘스,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까지 총 800여 곳이 참여했다. 약 7만㎡ 공간에 3000여 종의 제품이 전시됐다. ‘글로벌 최초’나 ‘중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제품만 100종에 달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에 사활
대규모언어모델(LLM)이나 AI를 사용한 단말 제품 등 AI 전반을 아우르는 행사였지만 주인공은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미국 테크 기업들 부스는 한산하리만큼 썰렁했지만 유니트리, 애지봇, 미니맥스, 문샷AI 등 중국 신흥 AI 기업 부스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제조, 물류, 소매, 엔터테인먼트, 교육 등 주요 산업과 일상생활에서 응용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앞다퉈 선보였다.
행사장 내 AI로 재구성된 상하이 옛 거리의 식료품점에선 중국 갤봇이 제작한 휴머노이드 로봇 G1이 소비자 요구에 따라 과자와 콜라 등을 선반에서 꺼내 가져다줬다. 갤봇 관계자는 “G1은 선반 정리, 선반 내 물건 꺼내기, 물건 보충하기, 운반하기를 95% 성공률로 수행한다”며 “최고 2.4m 높이까지 물건을 스스로 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리 외곽의 산업 구역에선 휴머노이드 로봇이 물건을 분류해 상자에 넣거나 쉼 없이 금속을 가공했다.
반려 로봇도 눈에 띄는 트렌드 중 하나다. 이날 중국 로봇 기업 푸리에 부스에는 러그가 깔린 거실에 소파가 놓여 있고, 푸리에의 GR-3 휴머노이드 로봇이 앉아 있었다. 이 반려 로봇은 언어 능력뿐 아니라 모션 캡처, 감정 인식 등의 소프트웨어를 갖췄다. 인간과 비슷한 움직임을 구사하는 데다 사용자 대화 내용, 음성 톤에 따라 상황 정보를 분석해 적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고령자에게 말동무가 돼주거나 아이들과 간단한 놀이를 할 수 있게 설계됐다.
올해 초 휴머노이드 로봇 군무로 주목받은 유니트리도 계단을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반려 강아지를 선보였다. 이 밖에도 빨래를 개거나 장난감을 정리하는 등 집 안 살림에 특화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애지봇의 한 엔지니어는 “반려 로봇은 감성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사용자 환경을 고려해 제품 형태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한 방향의 AI 기술 개발 힘써야”
중국에선 반려 로봇에 벤처 투자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2030년까지 글로벌 반려 로봇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196%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중국은 이미 ‘1가구 1로봇’ 시대를 빠르게 준비 중이다. 유니트리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징둥을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G1을 판매하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는 적게는 1000위안(약 19만원)짜리 장난감부터 많게는 수십만위안에 이르는 전문가용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다양하게 대여 혹은 판매한다. 중국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광범위하기 확산시키기 위해 최종 소비자에게 일종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스마트홈을 가속화하고, 여기에서 확보한 방대한 훈련 데이터로 또 다른 기술 혁신을 이루겠다는 목표다.
다만 소비자 교육과 수요 창출, 수익 모델의 지속 가능성 등은 중국 테크 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하드웨어 판매가 수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인데 중장기적으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제공으로 수익 다각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리창 총리는 중국이 세계에 AI를 보급하는 역할을 맡겠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각 국가·기업·집단은 AI를 평등하게 발전시키고 이용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며 “우리는 발전 경험과 기술을 세계 각국의 능력 배양을 돕는 데 쓸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개막식에 이어 개최된 고위급 포럼에서는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석학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가 “우리가 AI에서 벗어나는 선택지는 없다”며 AI 안전 연구소와 협회로 구성된 국제 공동체를 만들어 AI를 ‘선한 방향’으로 훈련하는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상하이=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