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맞선 일본 고교생들…스시 대신 김밥을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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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미국으로 떠나는 톰이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미국으로 떠나는 톰이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영화사 진진 제공

고등학생인 유타, 코우, 밍, 톰, 아타 5인방은 자잘한 사고도 치고 적당한 일탈도 즐기며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는 음악동아리 멤버다. 클럽에서 밤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오던 날, 유타와 코우는 교장이 학교 건물 앞에 전시하듯 주차해 놓은 샛노란 스포츠카를 세로로 세워놓는 장난을 친다. 범인을 색출하는 수사가 시작되는데 이때 일본 전역을 뒤흔든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다. 정치인들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외국인을 타깃으로 차별 정책을 강행하고 학교 역시 모든 학생을 CCTV로 감시해 벌점을 주는 ‘패놉티(panopty)’ 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지진 이후 학생들은 작은 쓰레기 하나를 버리거나 애정행각을 해도 감시 카메라에 포착돼 벌점을 받는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가장 차별받는 대상은 외국인 학생이다. 특히 국가 장학금 후보인 자이니치(재일동포) 3세 코우는 벌칙을 받아 장학금 수령 자격을 박탈당할까 봐 마음이 불안하다.

‘해피엔드’는 가까운 미래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학원물처럼 보이지만 실상 영화의 화두는 그보다 훨씬 심오하고 복합적이다. 영화는 지진이라는 사건을 통해 일본 내에서 벌어진 차별의 역사를 상기한다. 지진이 일어나고 국가가 공개적으로 외국인을 문제의 대상으로 지목해 차별을 부추기는 행태, 이로 인해 인종 간 갈등과 충돌이 벌어지는 광경은 간토 대지진을 떠올리게 한다. 코우는 이런 차별의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공부를 잘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인물이지만 경찰의 시도 때도 없는 불심검문에 시달린다. 그의 엄마가 운영하는 한국 식당에는 늘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외부인’이라는 낙서와 상흔이 존재한다.

‘해피엔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콘서트 필름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2023)로 데뷔한 네오 소라 감독의 첫 극영화다. 그는 토론토국제영화제 뉴욕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일본의 아트하우스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소라 감독이 직시한 일본 사회는 차별과 부조리가 시스템으로 정착한 공간이며 적어도 그가 대표하는 세대, 혹은 그 이후 세대만큼은 그 부조리에 대항하는 주체다. 이는 영화의 주인공인 5인방의 조합으로도 나타난다. 코우는 재일한국인, 밍은 대만인, 톰은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에서 태어난 혼혈인으로서 이들은 교실을 채운 많은 혼혈 학생을 반영하는 구성이기도 하다.

학교의 공공연한 인종 차별과 감시 카메라에 대항하는 학생들은 교장실을 점거한다. 늦은 밤이 되자 곧 교장실로 스시(초밥)가 배달되고 교장은 학생들에게 이를 나눠주지만, 그들은 교장의 호의를 내친다. 곧 교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존재는 코우다. 코우는 아이들에게 김밥을 건네고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코우의 김밥에 손을 뻗는다.

짤막하고도 코믹한 장면이지만 이 대목은 세대 간 차이, 혹은 세대교체를 종용하는 네오 소라식 유머다. ‘해피엔드’는 미래를 통해 유년을 추억하는 영화이자 그 유년 이전 시대에 있던 아름답지 못한 과거와 현재를 말하는 영화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일본에서 많은 사람에게 공유됐으면 하는 이유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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