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홀로 3000㎞, 낯선 발자국에 눈물이…

4 days ago 6

◇테 아라로아, 나에게로/나오미 아널드 지음·신정은 옮김/356쪽·2만1800원·그림나무 세계에는 한 번쯤 꼭 걸어보고 싶은 길들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찾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미국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의 책 ‘와일드’로 잘 알려진 미국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뉴질랜드의 자연사 전문 작가인 저자에게도 그런 길이 있었다. 뉴질랜드 남섬의 블러프에서 북섬 끝 케이프 레잉가까지 이어지는 약 3000km의 도보길 ‘테 아라로아(Te Araroa)’다. 비장하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2015년 처음 테 아라로아의 표지판을 본 저자는 오랫동안 그 길을 마음 한편에 품고 지냈다. 그러다 2023년 어느 주말, 아침 산책을 나섰다가 끝없이 뻗어 있는 트레일을 보곤 끝내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게 9개월 동안 저자는 눈 덮인 산맥과 원시림, 광활한 초원과 해변, 거센 강과 외딴 산장 등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통과한다. 모든 도보길이 그렇듯 쉽지 않다. 저자는 진흙과 폭우,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숱하게 겪는다. 발이 아파 울기도 하고, 무사히 돌아갈 수는 있을지 두려워하며 혼잣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저자를 괴롭힌 것은 고독이었다. 며칠씩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한 채 혼자 길을 이어가야 했던 저자는 길 위에서 겪는 감정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어느 날 오후, 북쪽으로 향하는 하이커가 남긴 발자국을 발견했다. 길 위에 먼지가 쌓인 채 오롯이 남아 있는 발자국을 본 순간 왠지 모를 감정에 북받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같은 철길을 달리고 있는 기차처럼, 만날 수는 없지만 매일 같이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깊이 공감할 대목이 많다. 또 하나 이 책의 미덕은 전반적으로 담담하다는 점이다. 완주하는 과정을 영웅적인 모험담으로 포장하지도, 대단한 변화의 서사로 꾸미지도 않는다. 그저 저자는 하루하루 길을 걸으며 순간을 감각하고, 지난 인생사를 곱씹는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길 위에서는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의 향기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횡설수설 트렌디깅 주성하의 북에서 온 이웃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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