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마상’ 입은 40만 명 보듬었다, 할머니들의 벤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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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들어주는 벤치/딕슨 치반다 지음·주민아 옮김/320쪽·2만 원·판미동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마주했을 때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거나 병원에 쉽게 갈 수 없는 환경이라면 어떨까. 짐바브웨의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열악한 의료 시스템의 한계 속에서 독특한 정신건강 돌봄 모델을 찾아냈다. 책은 2006년 저자와 할머니 14명이 시작한 ‘우정 벤치’ 프로젝트의 탄생과 확산 과정을 담았다. 당시 짐바브웨는 정신의학 전문의가 단 6명뿐이었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한 환자의 사망이었다. 에리카란 여성은 병원에 올 차비인 미국 돈으로 10달러(약 1만3500원)가 없어서 진료를 못 받고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저자는 의료 서비스가 닿지 않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갈 방법을 고민했다. 이후 그가 향한 곳은 의료 서비스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 중 하나인 음바레였다. 그곳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건 동네 할머니들이었다. 저자는 이들을 “열네 명의 나이를 합친다면, 그들은 천 년 이상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공동체의 보물을 소유한 주인들”이라고 표현했다. 상담 훈련을 받은 할머니들은 마을의 나무 벤치에 앉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문 용어로 상태를 규정하거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에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도왔다. 쇼나어(쇼나족이 사용하는 짐바브웨 공용어)로 ‘마음 열기’를 뜻하는 “쿠부라 풍그와”를 출발점으로 삼아 희망과 용기를 북돋웠다. 필요할 경우 가족과 이웃, 자립 소그룹 등 지역사회와도 연결했다. 작은 벤치에서 시작된 대화의 효과는 연구로도 확인된다. 미국의학협회 저널에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우정 벤치 상담을 받은 사람들의 우울과 불안 증상이 현저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테드(TED) 강연을 통해 이 스토리를 세계에 알렸고, 우정 벤치는 여러 국가로 확산됐다. 짐바브웨에서만 40만 명 이상이 할머니 3000여 명과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우정 벤치의 성공 사례는 병원 외부의 일상과 공동체에도 마음을 돌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학적 지식에 더해 오랜 세월 이웃과 살아온 경험과 관계망이 누군가의 회복을 도울 수 있다는 걸 일깨웠다. 작은 벤치에서 시작된 실험은 정신건강을 한 개인이 홀로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곁을 내어주는 공동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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