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벼농사는 관계, 밀농사는 독립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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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품격/투리 문테 지음·이영래 옮김/428쪽·2만8000원·21세기북스 싱가포르는 ‘벌금의 나라’로 유명하다. 일부 의료·치과용 등을 제외하면 껌 수입이 금지돼 있다. 쓰레기 투기나 무단횡단도 엄격하게 처벌한다. 이처럼 싱가포르가 규범에 깐깐한 이유는 뭘까. 저널리스트이자 미디어 기업가인 저자는 이를 싱가포르의 덥고 습한 날씨와 연결한다. 병원체가 번식하기 쉬운 환경에서 감염을 피하려는 행동이 엄격한 위생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견이다. 이런 생존 방식이 위생을 넘어 성(性)과 관련된 규범이나 낯선 외부 집단을 경계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생각과 신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 교양 인문학서다. 기후, 지리, 역사, 문화, 유전자까지 두루 살피며 우리가 충분히 따져보고 내린 결론이라고 믿는 생각에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조건들이 스며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저자는 벼농사와 밀농사 지역의 문화 차이를 소개한다. 물과 일손을 나누는 협력이 중요했던 벼농사 지역에선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상대적으로 혼자 농사짓기 수월했던 밀농사 지역에선 독립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발달했다고 본다. 조상들의 생계 방식이 후손들의 가치관에도 흔적을 남겼다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환경이나 유전자가 생각을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생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여럿이고, 어느 하나가 전부를 지배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판단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살피고 다른 사람과 근거를 따져보면서 생각을 고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의미 있는 이유다. 물론 “고온 다습한 지역의 사람들은 더 내향적이고 호기심이 적은 편”이라는 등 복잡한 인간의 행동과 문화적 특성을 몇 가지 근거로 단순하게 설명하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생각이 생겨난 배경을 살펴보는 데서 ‘대화’가 시작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상대의 의견을 무지나 편견의 산물로 몰아붙이기 전에 어떤 환경과 경험이 그 믿음을 만들었는지 생각하다 보면 타인을 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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