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리는 잊기 위해 메모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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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메모를 기억하기 위해 쓰지만, 적은 후에는 안심하고 내용 잊게 돼 ‘메모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단편적인 생각들 섞여 출판 어려워 ◇메모의 문화사/헥토어 하르쾨터 지음·김인건 옮김/752쪽·4만8000원·아르테 신간 ‘메모의 문화사’는 메모가 어떻게 인간의 사고와 문화의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 보여준다. 사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코덱스 레스터’.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평생 무언가를 썼다. 늘 메모장을 지니고 다녔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던 시절 한 목격자는 “언제나 그의 벨트에 달려 있던 작은 책”을 기억했다. 그런데 다빈치는 평생 단 한 권의 책도 출판하지 않았다. 그는 대체 누굴 위해 그렇게 끊임없이 썼던 걸까.독일 본라인지크 응용과학대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가르치는 저자의 ‘메모의 문화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메모를 완성된 생각을 보존하는 기록물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가 처음 밖으로 나오는 원초적 매체로 바라본다. 생각은 보고서나 논문처럼 처음부터 질서정연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메모는 날것의 사유 그 자체다.다빈치는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에게 자신의 문서들을 남겼다. 멜치는 다빈치의 메모를 하나의 출판 가능한 원고로 정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메모장에는 이질적인 텍스트와 단편적인 생각들이 뒤섞여 있었고, 체계적인 편집과 인쇄가 어려웠다. 멜치가 세상을 떠난 뒤 다빈치의 메모는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오늘날 그의 메모는 윈저성, 파리 프랑스학술원, 바티칸, 뉴욕 등에서 발견된다. 한 사람의 사유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셈이다.책은 다빈치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로베르트 발저 등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남긴 메모를 통해 완성된 저작만으로는 들여다보기 어려운 창작의 과정을 보여준다.저자는 메모를 ‘비소통적 미디어’로 정의한다. 독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고, 타인과의 대화를 전제로 하지도 않는다. 발저의 ‘미크로그라메’는 그 극단에 놓인다. 발저는 극도로 작고 암호 같은 글씨로 메모지를 가득 채웠다. 글자의 크기는 0.5∼3mm에 불과했다. 연필심이 뭉툭해질수록 글씨는 더욱 희미해졌고, 후기의 미크로그라메는 발저 자신조차 거의 해독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타인에게 읽히지 않는 걸 넘어 미래의 자신에게조차 제대로 읽히지 않는 글이다.그렇다면 메모는 왜 쓰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메모를 ‘기억하기 위해’ 쓴다고 생각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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