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헤세, 종이 구했어” 전후 독일 지성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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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이 소설은 반드시 완성되어야 합니다/페터 주어캄프 지음·홍성광 옮김/256쪽·2만 원·눌민 “‘유리알 유희’를 위해 며칠 전 마침내 초판을 찍을 종이를 확보했습니다. 이 종이를 러시아 점령지에서 이쪽으로 들여오기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헤르만 헤세 귀하’로 시작하는 이 편지의 발신인은 헤세의 편집자이자 주어캄프 출판사를 세운 페터 주어캄프(1891∼1959)다. 편지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한 권의 책을 찍기 위해 종이를 구하고,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인쇄소를 찾아야 했던 긴박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겼다. 주어캄프가 1945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59년까지 작가와 지식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선별해 묶은 책이다. 주어캄프는 나치가 출판계를 장악하고 출판사를 선전 도구로 만들던 시기에 출판 일을 했다. 1944년 나치에 의해 국가반역죄 혐의로 체포돼 수감되기도 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자주 침대와 병원에 누워 지내야 했던 그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 속 주어캄프는 원고의 방향을 세심하게 조언하고, 출간을 제안한다. 종이를 구하는 일부터 책의 판본과 유통을 고민하는 일까지,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을 끈질기게 챙긴다. 그가 펴낸 책의 저자 목록은 전후 지성사의 한 축을 이룬다. 헤세를 비롯해 베르톨트 브레히트, 토마스 만,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프리슈 등의 저술이 주어캄프를 통해 독자와 만났다. 그가 만든 건 출판사와 작가가 책을 매개로 지적·정신적 공동체를 이루는 방식이었다. 훗날 ‘주어캄프 문화’로 불린 이 전통은 전후 독일의 지성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책의 향기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고양이 눈 광화문에서 밑줄 긋기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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