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취를 감췄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중식당마다 전속 배달원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하면 정말로 ‘10분 만에’ 배달해주기도 했다.
그때 중식 배달에 널리 쓰인 오토바이는 최고출력 8.5마력의 ‘대림 시티(citi) 100’이었다. 오른손으로 핸들을 잡고, 왼손으로 ‘철가방’을 쥔 배달원의 모습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지금이야 100마력 고성능 오토바이가 즐비하지만 대림 시티 100은 가장 대중적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8.5마력은 말 8.5마리가 끄는 힘을 의미하니 ‘짜장면 한 그릇 배달을 위해 말 8.5마리의 힘이 동원됐다’는 얘기가 된다.
신간 ‘속도비평’의 저자 이영준은 이 모습을 회고하면서 사유한다. “설렁탕 국물은 데워서 복구 가능하지만 면이 불면 비가역적인 파국이 된다. 불은 짜장면은 더 이상 짜장면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왔다고 말하는 이 책은,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보이지 않던 속도의 속살을 추적한다. 남태령을 오르내리던 총알택시부터 초속 192㎞로 뻗어나가는 태양탐사선까지, 속도와 문명을 사유한다.
속도가 살기(殺氣)를 품던 시대를 우리는 지나쳐 왔다. 가령 총알택시는 서울 풍경의 엄연한 한 단면이었다. 저자는 고갯길을 거침없이 올랐다가 내리막길에서 150㎞로 질주하는 남태령 총알택시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서스펜션도 시원치 않은 택시의 속도는 살벌했다. “빨리 갔다 와야 또 한탕 뛰어 돈을 벌 수 있기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건 과속이 일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속도를 통제하기 시작했지만, 도시는 언제나 속도와 친연관계를 맺어왔다. 근본적으로 도시는 빠른 속도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밀도가 높아지면서 도시는 점차 정체를 마주하게 됐다. 정체된 도로를 보면 짜증을 내지만 정체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일상을 넘어 우주적인 차원에서도 속도는 문명을 추동했다. 고도 700㎞ 지점에서 위성들을 다 배출해낸 시점의 누리호 속도는 음속의 22배인 초속 7.5㎞였다. 이는 지상에선 불가능한 속도다. 인간이 우주로 보낸 물체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를 지닌 건 2018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발사한 태양탐사선 파커였다. 초속 192㎞인 파커는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의 초속 17㎞의 10배가 넘는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으로 느껴볼 수조차 없는 초현실적인 속도를 만들어냈다.
몸속에서도 속도는 작동한다. 피가 흐르는 속도, 신경전달물질이 움직이는 속도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므로 의학 역시 속도의 지배를 받는다. 그런데 신체 내에서도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정상적인 혈류 속도는 대동맥에서 초당 50㎝여야 하고, 모세혈관에선 초당 0.5㎜여야 한다. 의학의 역사를 보면 속도를 재려는 인간의 고투는 눈물겨웠다. 몸을 절개할 순 없으니 이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맥박과 혈압을 재고, 음파와 영상을 활용했다.
속도는 시간과 유관하므로 기록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도에 능했던 인물은 여럿이었다. 활솜씨에 탁월했던 태조 이성계는 속도 측면에서 신의 경지였다고 책은 전한다. 어떤 위태로운 자세에서도 정확히 쏴서 짐승을 잡아냈으니 그는 동체시력 측면에서 가히 으뜸이었다. 44년간 도화서 화원이었던 긍재 김득신의 그림 ‘야묘도추’는 병아리를 입에 문 들고양이를 순간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저자는 ‘1000분의 1초’ 정도의 짧은 셔터 속도 사진을 연상케 한다고 쓴다.
속도란 도대체 뭘까. 책은 “속도는 근대인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요소, 영혼까지 팔아가며 추구해온 가치”라고 진단한다. 속도는 실존 내지 생존을 결정짓는 변수였고, 인류는 속도를 저해하는 적대적인 환경을 이겨내야 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현대인 삶의 한 고리로서 ‘속도의 체인’을 이야기하는데, 인간 자체가 속도 체인의 일부가 된다. 속도는 세상을 촘촘히 뒤덮고 있다고, 저 속도의 체인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고 책은 강조한다.
빠른 속도에 질색하며 우리는 속도로 지배되는 세상을 손가락질하지만 속도 비판은 이중적인 결과를 낳는다. 느림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느림의 가치를 적은 책을 읽으며 위안받지만, 자신의 가족을 실어 나를 앰뷸런스까지 느리게 오는 상황을 감내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또 느림의 가치를 홍보하는 홈페이지의 접속 속도가 느리면 누구라도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빠른 속도를 예찬하는 것도 아니다. 도로의 속도를 제한하는 과속 단속 카메라는 미셸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원형감옥)’의 현대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카메라는 행정력과 결합해 인간의 삶을 제한한다. 저자는 “우리는 왜 이렇게 빠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종류의 속도 속에 살고 있는가. 속도는 과연 우리의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리듬을 통제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영준 지음,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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