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패배 불감증'에 빠진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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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패배 불감증'에 빠진 국민의힘

‘국민의 요구와 경고를 겸허하게 수용하겠습니다.’

6·3 지방선거 이튿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긴급의원총회장 대형 모니터에 떠 있던 문구다.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네 곳만 건져 올린 참혹한 성적표에 대한 나름의 공식 반성문이었다.

그러나 모니터 밖 풍경은 전혀 딴판이었다. 의원총회가 비공개로 전환된 이후에도 의원들 사이에선 ‘지방선거 치르느라 고생 많았다’는 격려성 인사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다음날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사퇴 의사를 밝힌 송언석 원내대표가 그간의 어려움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자 동료 의원들이 ‘힘내라!’고 소리치며 격려하는 등 침통한 분위기는 보이지 않았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도저히 선거에서 진 정당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경기 부산 충청 강원 등 주요 지역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면서 서울을 극적으로 지켜냈다. 무능한 야당에 회초리를 들면서도 여당의 폭주는 견제하라는 국민 여론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참패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대구·경북(TK) 두 곳만을 지킨 2018년 지방선거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마저 뺏길 위기를 겪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국민의힘이 처한 처절한 현실을 드러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두 차례나 최고위원회의를 열었지만 선거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집중 조명했을 뿐이다. 장 대표는 8일 ‘지선 결과에 따른 거취 표명이 필요하다는 원내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객관적인 데이터를 놓고 여러분은 이번 지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되물었다. 사실상 선거에서 지지 않았다고 자평한 것이다. 당권파로 분류되는 한 최고위원도 기자들과 만나 “광역단체장이 2018년 선거 대비 두 배나 늘었다”며 이번 지방선거는 사실상 이긴 것과 다름없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직후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고 적힌 거대한 현수막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최소한 그들에게는 패배를 부끄러워하고 민심을 무서워하는 염치가 있었다. 그런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알았던 자유한국당조차 처절한 내부 혁신에 실패하며 2020년 총선에서 103석이란 전례 없는 참패를 당했다.

지금 국민의힘의 진짜 위기는 선거 참패보다 ‘부끄러움의 상실’에 있다. 스스로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모르는,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는 이들에게 어떤 혁신과 쇄신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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