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로 떠난 화가…예술의 원정인가 욕정의 망명인가 [화폭역정 28]

1 week ago 28

폴 고갱의 ‘죽은 자의 영혼이 지켜본다’(1892). 타히티에 머물던 시절 고갱과 함께 살았던 13세 원주민 소녀 테하아마나를 그렸다. 뒤쪽 어둠 속 노파는 타히티 민간신앙에서 말하는 ‘죽은 자의 영혼’을 상징한다. 겁에 질린 듯한 소녀의 두려움이 이 영혼 때문이라고 고갱은 설명했으나 후대는 늦은 밤 들이닥친 고갱이 원인일 것으로 짐작했다. 침상의 노란 천, 배경의 보랏빛 공간 등 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유럽인 남성 예술가와 원주민 어린 소녀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드러낸 윤리적 논란은 남아 있다. 황마포 배접 캔버스에 유채. 72.4×92.4㎝. 버펄로 AKG미술관(미국 버펄로) 소장.여기, 세상이 열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화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독하게 어긋난 운명, 고단하고 허무한 삶이었노라고 말입니다. 이데일리는 오랜 시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어온 이윤희 미술평론가와 함께 세계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천재작가들의 인생역정을 더듬습니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섭니다. 뜨거운 예술혼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 그 쓸쓸한 생이 한사코 밀어냈을 결정적 장면을 엿봅니다. 삶이 묻고 그림이 답합니다. 캔버스에 굽이치던 화가의 인생길 ‘화폭역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께 다가섭니다. <편집자> [이윤희 미술평론가] 1891년 6월, 프랑스에서 출발한 배가 남태평양 타히티의 항구 파페에테에 닿았다. 두 달 넘게 바다를 건너온 폴 고갱(1848~1903)은 막 마흔셋이 된 참이었다. 뒤로한 유럽에는 아내와 다섯 아이가 있다. 앞에 펼쳐진 타히티에는 야자수와 따뜻한 바다, 아직 자신의 그림에 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있다. 고갱은 이곳에서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삶을 만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배에서 내린 고갱을 맞은 것은 이미 유럽의 손길이 많은 것을 변화시킨 풍경이었다. 타히티는 1880년 프랑스에 병합됐고, 수도인 파페에테에는 식민지 관리와 상인, 선교사들이 살고 있었다. 원주민의 생활에도 오랜 선교의 흔적이 남아 고갱이 상상한 것처럼 문명의 바깥에서 시간을 잊고 살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바뀌는 세상과 생계가 있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권력과 종교에 적응하며 살아온 역사가 있었다. 유럽에서 간 화가에게는 자신이 보지 못했던 낙원이 필요했지만 타히티 사람들에게는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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