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다친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면 청구액은 손해액에서 보험 급여를 먼저 공제한 후 과실상계하는 방식으로 산정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급심은 사업장의 과실과 근로자의 부주의가 모두 문제 됐다면 ‘상계 후 공제’ 방식이 맞는다고 봤지만, 상고심에서 뒤집혔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A씨가 자신이 다니던 건설회사 B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B사가 A씨에게 82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한 1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6월경 B사의 신축공사 현장에서 그라인더로 합판을 자르던 중 그라인더 톱날이 튀면서 왼쪽 손목을 다쳤다. B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한 사업주였고,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A씨에게 장해급여 5420만2500원을 지급했다.
B사가 면장갑만 지급해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B사가 보험금만으로 보전되지 않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2심은 A씨가 부주의했던 점을 참작해 B사의 책임을 70% 비율까지만 인정했다. 그러나 A씨의 과실(30%)을 먼저 상계한 후 장해급여를 공제하면 장해급여로 지급된 것 외에는 남는 손해액이 없는 것으로 계산해 위자료 820만원만 인정했다. 이른바 ‘상계 후 공제’에 따른 계산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손해 발생에 근로자의 과실이 경합한 때에는 공단이 근로자에 지급한 보험급여 중 근로자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은 공단이 근로자를 위해 종국적으로 부담하는 것이므로, 사업주의 손배 책임이 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 전액만큼 당연히 면제된다고 볼 순 없다”면서 ‘공제 후 상계’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2022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원심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제삼자가 아닌 사업주의 불법 행위로 보험급여가 지급됐다는 이유만으로 ‘상계 후 공제’ 방식을 적용한 원심 판단은 근로자의 손배액을 산정하는 방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봤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