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적 안정성이 떨어진 국가별 상호관세 대신 품목관세를 관세전쟁의 핵심 카드로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4일 철강·알루미늄 관세율을 25%에서 50%로 끌어올린 데 이어 12일(현지시간) 철강관세를 적용받는 파생상품 대상에 가전제품을 대거 추가했다. 상무부는 “국가 안보를 해치는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관세율과 관련해서도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별 관세율을 높이고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이를 각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지렛대로 삼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정부는 ‘해방의 날’로 명명한 지난 4월 2일 무역적자 규모에 근거해 한국에 25% 등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발표했다. 다음달 8일까지 90일 유예 기간 동안 10% 기본관세만 적용하면서 국가별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상호관세의 근거법인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활용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의회가 아니라 대통령이 임의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뒤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권한을 넘어선 행위라는 것이 1심 재판부 판단이다. 항소심에 들어갔지만 트럼프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상호관세 협상의 근거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상호관세를 통해 양보를 얻어내려고 한 중국과의 협상도 큰 소득 없이 봉합됐다. 9~1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협상에서 트럼프 정부는 미국 기업을 옥죄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완화 조치를 받아냈지만, 이는 6개월 동안만 적용된다. 그 후에는 중국 측이 다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으로부터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협상이 마무리되는 모습은 다른 협상 상대에게 미국의 관세전쟁 압력이 느슨해졌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트럼프 집권 1기부터 사용된 품목별 관세는 상호관세와 달리 법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낮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의 그물망을 더 넓게 펼치고 관세율을 높여서 타격을 주면 한국과 일본 등 주요 협상 상대방을 압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트럼프 정부의 계산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