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정보실패와 전쟁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DNI))“이란은 몇달 내 시험용 및 초기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확실히 1년 내 달성할 수 있다.”(베탸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미국이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미국,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상반된 분석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번 무력충돌의 핵심 명분인 이란의 핵개발 능력에 대한 분석입니다. 이는 향후 미국의 군사개입 명분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보 평가에 그칠 사안이 아닙니다. 22년 전 미국의 이라크전쟁도 이라크의 WMD(대량 살상무기) 능력에 대한 잘못된 평가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당시와 ‘데자뷔’ 같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美 정보기관 “당장 무기화 아니야” VS 이스라엘 “몇달 내 개발”
이는 9일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모사드 등의 분석을 토대로 이르면 몇 달 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그는 “우리는 9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발견했다”고도 말했죠. 구체적인 개발 시기와 농축량까지 제시하며 이란 공습의 시급성을 강조한 겁니다.
이처럼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분석이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후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17일 G7 정상회의를 하루 앞당겨 귀국하는 길에 개버드의 발언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트럼프는 “그녀가 말한 것은 상관없다“고 일축한 뒤 “나는 이란 핵무기 개발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자국 정보기관보다 동맹국 정보기관의 분석을 더 신뢰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역사적 편견으로 소련군 초기 패배 초래한 스탈린
이에 스탈린은 독일 침공 정보를 자신과 히틀러를 이간질하려는 처칠의 음모로 규정하고, ‘역(逆) 정보’에 속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수령의 지시에 소련 정보기관은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죠.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주의 혁명관이 ‘정보 실패’로 이어진 겁니다.
‘정보 왜곡’ 이라크전쟁 데자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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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정자가 정보기관을 길들이는 이른바 ‘정보기관의 정치화’는 지금 상황의 데자뷔로 꼽히는 이라크 전쟁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미국 싱크탱크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2004년 1월 8일 보고서에서 “이라크가 WMD를 폐기 또는 이동하거나 은닉했을 가능성은 없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의 WMD 위협을 조직적으로 왜곡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9.11 테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일으킨 이라크 침공 명분을 얻기 위해 정보기관이 나서 WMD 위협을 조작했다는 겁니다.
예컨대 CIA는 2001년 이라크가 암시장에서 알루미늄 튜브를 구입하려고 한 것을 핵무기 개발 증거라고 보고했습니다. 해당 알루미늄 튜브의 크기, 모양, 재질이 핵무기 부품과 전혀 다르다고 밝힌 타 정보기관의 분석은 무시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해당 알루미늄 튜브가 재래식 로켓용 부품이며, 핵무기와 무관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또 CIA의 WMD 정보 출처 중 하나는 이라크인 망명자들이었는데 이것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사담 후세인 축출을 염원한 망명자들이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 WMD 존재를 허위로 보고했기 때문이죠.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군사 개입 여부를 놓고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자국 정보기관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분석을 신뢰한 그의 인식은 향후 국면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판단이나 편견 등에 빠지면 이라크 전쟁의 비극이 재현될 수 있다는 걸 경계해야하지 않을까요.
[참고 문헌]-크리스토퍼 앤드루·박동철 역 〈스파이 세계사〉 1, 2, 3 (한울·2021년)
-Foreign Policy 〈What Israeli Intelligence Got Wrong About Hamas〉 (2023.10.11)
-전웅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정보실패〉 (세종연구소, 2005년)
“모든 해답은 역사 속에 있다.” 초 단위로 넘치는 온라인 뉴스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연이은 뉴스들 사이에서 하나의 맥락이 보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 학술 담당으로 역사 분야를 여러 해 취재한 기자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뉴스를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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