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미국의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한 페루 출신 테너 루이지 알바(본명 루이스 에르네스토 알바 타예도)가 현지 시간 15일 이탈리아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
1927년 4월 10일 페루 파이타에서 태어난 알바는 처음에는 해군을 꿈꿨다. 그는 2018년 미국의 오페라 전문 매체 오페라 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해군 학교에 다녔지만, 노래는 항상 내 안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해군 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의 노래를 들은 리마 국립음악원의 로사 메르세데스 아야르사 데 모랄레스 교수가 “너의 미래는 해군이 아니라 너의 목소리에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이후 알바는 페루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1949년 모레노 토로바의 오페레타 <루이사 페르난다>로 데뷔했다. 1953년에는 밀라노로 유학해 에밀리오 기라르디니, 에토레 캄포갈리아니에게 사사받았다. 1954년 밀라노 테아트로 누오보에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으로 유럽에 첫발을 내디뎠다.
알바는 1956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알마비바 백작 역으로 데뷔했다. 벨칸토 창법으로 노래하며 매끄럽게 스케일을 처리해야 해 테너가 노래하는 역할 중 고난도로 손꼽히는 알마비바 백작 역으로 스칼라 무대에 330회 노래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1964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베르디의 <팔스타프>로 데뷔했고, 뉴욕 무대에 총 101회에 출연했다.
그는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마술피리> 도니제티의 <돈 파스콸레>, <사랑의 묘약> 등 레파토리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유수 극장에서 노래했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테레사 베르간, 피오렌차 코소토,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와 바리톤 티토 곱비 등 당대 최고의 성악가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페루의 엘 코메르시오에 따르면 알바는 단지 노래만으로 역사를 쓴 사람이 아니다. 그는 1970년대 말 무대에서 은퇴한 후 고국 페루로 돌아와 리마 시립극장을 맡아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페루의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해 페루 오페라 부흥에도 힘썼다. 그의 노력으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페루를 방문해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한 것이 대표적이다.
1980년 알바는 리마에 페루 오페라진흥협회(Asociación Prolírica del Perú)를 설립해 자국의 성악 발전에 기여했다. 1989년에는 루이지 알바 상(Premio Luigi Alva)을 제정해 신진 성악가들을 지원했다. 말년에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성악학교 ‘라 스쿨라 디 칸토’에서 실기 수업을 통해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미겔 몰리나스 리마 시청 문화국 대표는 그를 '세계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테너'라고 평가하며 그의 헌신이 덕분에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는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와 에르네스토 팔라시오 등 페루 출신 성악가가 나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2012년 페루 정부는 그의 업적을 인정해 페루 문화부의 문화공로인(Personalidad Meritoria de la Cultura) 훈장을 수여했다. 2005년에는 페루 우정청에서 페루를 빛낸 테너 루이지 알바 기념 우표가 발행됐다.
그의 대표적인 오페라 실황 녹음으로는 테레사 베르간자, 마리아 칼라스, 피오렌차 코소토 등과 함께한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출연한 <돈 파스콸레>, 루치아 포프와 녹음한 모차르트의 <목동 왕> 등이 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