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은 韓, 속살은 中…'난공불락' 대형가전마저 위협하는 레드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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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14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가전 시장은 크게 둘로 나뉜다. 가습기, 헤어드라이어 등 4조원 규모 소형 가전과 TV, 냉장고 등 10조원짜리 중대형 가전이다. 이미 중국 손아귀에 넘어간 소형 가전과 달리 중대형 시장은 오랜 기간 중국의 공습에서 벗어난 ‘무풍지대’였다. 한 번 구입하면 10년 넘게 쓰는 제품이란 점에서 브랜드 파워와 품질, 애프터서비스(AS)가 구매를 결정하는 키포인트였기 때문이다.

포장은 韓, 속살은 中…'난공불락' 대형가전마저 위협하는 레드테크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국내 중대형 가전 시장에 쌓은 굳건한 성벽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경기 침체로 지갑이 홀쭉해진 상황에서 쿠팡, 이마트 등 친숙한 브랜드로 ‘이름’을 갈아탄 초저가 중국산 제품이 쏟아지면서다. 가성비 제품에 목마른 유통사들이 중국 가전업체들과 손잡고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늘리고 있는 만큼 중국의 가전 시장 공습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가전 시장 잠식하는 중국산 PB

롯데하이마트는 최근 ‘PLUX(플럭스)’로 이름을 단 PB를 공식 론칭했다. PB 가전 품목을 늘리기 위해 최근 아웃소싱 담당자도 채용했다. 유통사들이 PB에 열을 올리는 건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붙잡을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울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의 반값’에 이끌린 소비자들을 충성고객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쿠팡 PB인 ‘홈플래닛’으로 나오는 풀HD급 22형 게이밍 모니터 가격은 8만4000원이다. 출시 50일 만에 1만 대 넘게 팔린 하이마트의 245L ‘싱글원 냉장고’는 29만9000원, 이마트 일렉트로맨의 65형 스마트 TV는 60만원이다. 비슷한 크기와 성능을 갖춘 삼성·LG 제품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싸게 판매한다고 삼성·LG에 비해 마진이 박한 것도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1순위 목표는 더 많은 한국 소비자가 중국 제품을 경험해 ‘중국산 품질이 한국산 못지않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며 “이에 유통사들도 마진을 크게 낮추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은 한국 내 핵심 공략 대상을 가격에 민감한 자취생과 1~2인 가구에서 일반 가정으로 넓혀가고 있다. 중국산 가전 호평이 직접 체험해본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 홈페이지 댓글 등을 통해 ‘PB 제품을 써보니 생각보다 괜찮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며 “중국 가전의 공습이 예상보다 더 크고 빠를 수 있다는 점에 국내 업계가 모두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제품 고장 더 이상 문제 안 돼

중국산 가전이 인기를 끄는 또 다른 배경에는 AS가 있다.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좋아지면서 고장률이 대폭 낮아진 데다 유통업체들이 국내 업체 등과 손잡고 AS 문제도 해결했기 때문이다. 쿠팡 홈플래닛 TV는 2년 무상 AS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단순 변심도 30일 안에 무료로 반품해준다. 롯데하이마트는 한술 더 떠 TV 무상 5년 보증 서비스를 해준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이 미국 가전 시장에 침투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TCL, 하이센스 등 중국 가전업체들은 월마트, 로쿠TV(미국 1위 스트리밍 TV 플랫폼) 등 미국 기업의 PB로 중저가 가전·TV 시장을 장악했다.

삼성과 LG는 고객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타깃을 소득 상위 70%에서 90%로 확대하기로 했다. LG전자가 프리미엄 제품인 올레드(OLED) TV뿐 아니라 중저가 LCD TV 라인업을 보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가격 측면에서 중국과 맞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의명/김채연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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